안성재의 모수, 손종원의 라망시크레…. 최근 한국 파인다이닝 문화를 이끄는 레스토랑이다. ‘아는 사람만 알던’ 파인다이닝은 넷플릭스의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흥행을 계기로 대중이 즐기는 문화가 됐다. 스타 셰프가 된 이들은 최근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당당히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내건 셰프에게도 무명(無名)으로 요리를 배운 곳이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마(SoMa)에 있는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베누다. 일곱 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코리 리(한국명 이동민·사진) 셰프는 이곳에서 장, 순대, 김치 등 일상적인 한식 재료에 프렌치 테크닉을 가미한 독창적인 요리를 내놓고 있다. 안성재·손종원 셰프가 자신만의 요리 세계를 구축한 곳도 베누다. 베누는 미식계의 오스카상이라고 불리는 ‘북미 최고의 레스토랑 50’ 2026 어워드에서 최근 33위에 오르며 여전한 영향력을 증명했다. 특히 리 셰프는 요식업계에 가장 큰 영감을 준 셰프에게 수여하는 ‘에스트렐라 담 셰프 초이스 어워드’도 거머쥐었다.
리 셰프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셰프와 손님, 농부까지 모두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서로 배우고, 발전하고 영감을 주고받아야 한다”며 “그래야만 파인다이닝이 단순히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리 셰프와의 일문일답.
▷17세에 ‘블루리본스시’에서 요리사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요리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렸을 적에는 셰프가 되거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셰프의 세계를 처음 가까이에서 접했을 때 이상하게 바로 끌렸어요. 훌륭한 셰프에게는 육체적 능력과 예술성이 동시에 요구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요리계 거장 토마스 켈러가 운영하는 프렌치런드리에서 근무했습니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매우 특별한 기억입니다.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시골에서, 오직 요리에 필요한 기량을 기르는 데 몰두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요리에 관한 모든 것에 집착할 만큼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프렌치런드리가 있는 미국 나파밸리는 와인과 훌륭한 식재료의 원산지로도 유명하죠.
“일이 없을 때는 농부들과 공급업자를 찾아갔고, 식품 과학과 세계 각국의 요리에 관한 책을 읽으며 새로운 메뉴를 구상했죠. 지금 돌아보면 그야말로 오로지 배우는 데만 집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켈러 셰프가 준 가장 큰 가르침은 무엇인가요.
“사람을 신뢰해야 한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면 결국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죠.”
▷베누 창업은 어떻게 결심했습니까.
“프렌치런드리에서 헤드셰프로 일하고 있었지만, 그곳에서 손님에게 제공하는 경험은 결국 켈러 셰프와 프렌치런드리를 대표하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요리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그것이 너무 아시아적이거나 한국적인 느낌이 강하면 메뉴에 올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죠. 시간이 지나며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게 창업의 계기였어요.”
▷한식의 어떤 부분이 셰프님을 사로잡았나요.
“한국 음식의 강점은 우리가 모두 익숙하고 흔하게 여기는 전통 음식에 있습니다. 그 음식들에는 놀라울 만큼 장인의 깊이가 담겨 있어요. 소박하고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미식적인 가치를 지녔다는 점, 바로 그 이중적인 매력이 한국 음식의 힘이죠.”
▷13년째 미쉐린 3스타를 유지한 비결이 있습니까.
“특별한 비결이 있는 건 아니에요. 다만 음식을 만드는 목적 그 자체가 수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쉐린 스타 또는 어떤 순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것에 그렇게 큰 비중을 두지 않아요. 함께 일하는 팀원들에게 단 한 번도 ‘미쉐린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음식을 통해 손님에게 기쁜 경험을 선사하고 싶을 뿐이죠.”
▷안성재 셰프의 재능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안 셰프는 특별한 제자였어요.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처음으로 채용한 한국인 요리사이기 때문에 저 역시 그의 성장에 더 많은 관심을 뒀죠. 다만 꼭 성공하길 바랐기 때문에 때로는 더 엄격하게 대하기도 했습니다.”
▷‘흑백요리사’ 시리즈를 보셨나요.
“워낙 인기가 많아 한번 보려고 했지만 끝까지 보지는 못했습니다. 30년 넘게 주방에서 매주 70~80시간 일하다 보니 쉬는 시간에 요리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는 건 쉽지 않네요.”
▷최근 한국에서 불고 있는 파인다이닝 열풍은 어떻게 바라봅니까.
“지금 한국에서 수준 높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생겨나는 흐름이 매우 반갑습니다. 밍글스, 모수, 산 같은 레스토랑을 떠올리면 이제는 높은 수준의 셰프가 늘어나고, 파인다이닝이 제대로 성장할 기반도 조금씩 마련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식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까요.
“단순히 전통을 지키는 데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현대적인 기술과 새로운 재료를 통해 계속 발전시키면서도 우리 삶 속에서 여전히 의미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음식으로 남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약 인생의 마지막 한 끼를 먹어야 한다면 셰프의 식탁 위에는 어떤 음식이 오를까요.
“아내가 끓여주는 김치찌개입니다. 다만 밥은 제가 직접 지을 것 같네요.(웃음)”
샌프란시스코=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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