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솔뫼 '사과'
오해와 오인의 굴레를 넘어
자기만의 감각 조용히 지키는
'무해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
애리는 주로 사원 숙소에서 거주해 왔다. 고정된 집 없이 늘 부유하듯 사는 삶이다 보니, 가구를 사는 일이 매번 꺼려진다.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끝마친 것도 아니면서, 어디선가 떠나온 느낌만으로 살아가는 삶. 하지만 그런 애리에게도 정주(定住)의 공간은 있다. 바로 '잠'이다. 그에게 잠은 하나의 장소다. 현실에서 이해받지 못해도 잠이 들면 안정적인 거처가 돼주는 곳.
올해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진출해 심사위원들의 고른 호평을 받은 박솔뫼 작가의 단편 '사과'의 설정이다. 잠시 머물되 소유할 순 없는 집,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장소인 잠을 사유하는 이 소설은 무해한 사람들이 서로를 오해하는 일과 기후위기 이후의 삶의 면면을 사유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기숙사에 머무는 애리는 주말이면 카페로 갔다. 20세기 중반에 문을 연 오래된 카페였고, 애리는 그곳에서 점원으로 근무한다. 애리는 커피 가공회사에서 '커피가 거의 들어가지 않았지만 커피의 맛을 구현하는' 뭔가를 만드는 선호를 만난다. 기후위기로 커피 작황이 좋지 않아 가격이 치솟으면서 선호는 커피를 대체할 뭔가를 개발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실상 연인이 된다.
한 번도 자신의 거처를 가져본 적 없는 애리가 현실이 아닌 잠에 장소성을 부여한다면, 선호는 커피의 맛을 구현하겠다는 의지로 허상의 미각을 현실 속에 불러내려 한다. '현실의 감각을 비현실 속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맞닿아 있다.
문제는 선호가 안정적인 거처에 거주한다는 점이다. 그는 국제학교를 나왔고, 부모의 자산을 물려받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애리는 선호의 집을 오가며 자신의 삶에 부여됐던 밀도와, 선호의 삶에 주어졌던 밀도의 강한 차이를 감지한다. 제목 '사과'는 여기서 중요해진다. 애리는 사과를 먹고 있을 뿐이지만 선호는 그걸 감자로 보는 문제적 장면 말이다. 애리는 손에 쥔 것이 감자가 아니라 사과임을 증명해야 하지만 굳이 그럴 이유를 찾지 못한다. 따라서 이 소설은 무해한 사람들도 서로를 오인하는 세계의 한 장면을 그려낸다. 애리는 자기 감각을 지켜내고, 선호와 다시 점원과 손님의 관계로 돌아가 인사한다.
특히 이 소설은 기후위기를 다루지만, 위기 자체를 사건의 중심에 세우지는 않는다. 사건은 배경으로 물러나고, 사건을 통과하는 인물의 감각만을 전면에 놓기 때문이다.
강동호 평론가는 "박솔뫼 소설 특유의 정서, 또 읊조리듯 이어지는 문체가 있는데 이제 그것이 한 작가의 개성 차원을 넘어서 어떤 한 단계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다. 박솔뫼식 세계관이 소설적 설정과 가장 잘 맞아떨어진 작품이란 생각으로 읽었다"고, 최가은 평론가는 "기후위기에 의해 커피가 소수의 특권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사치품이 된 미래를 그리는 작품이지만, 소설의 관심은 디스토피아적 설정 자체에 머물지 않는다. 소설은 그 변화한 세계와 관계를 맺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어지는 삶의 면면에 집중한다"고 평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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