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작은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
첫 공식 경쟁부문 도입·초청작 64개국 241편
무려 30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처음 부산에 바닷바람을 타고 불어온 영화의 꿈은 이제 아시아 최대의 거대한 축제가 됐다. 무수한 작품이 이곳에서 소개됐고, 감독과 배우들이 첫 걸음을 내딛기도 했다. 관객은 그들과 이야기로 소통하며 웃고 울며 함께 해왔다.
지난해 개막작은 넷플릭스 영화 ‘전,란’이었다. 외피는 OTT였지만 극본은 박찬욱이 쓴 이야기였다. 플랫폼과 산업의 긴장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듯한 전란의 시기를 뚫고, 올해의 개막작도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다. 2년 연속 박 감독의 스피릿이 영화제의 시작을 장식하는 셈이다.
결국 OTT냐, 극장이냐를 가르는 논쟁은 더 이상 본질이 아님을 증명한다. 영화의 바다에서 중심에 남는 건 언제나 이야기였고, 부산국제영화제는 그 이야기를 품어온 바다이자 항구였다.
그리고 더 새로운 도약을 위한 30번째 축제가 오늘(17일) 시작된다.
◆ 역대 최대 규모, 328편 상영…첫 공식 경쟁부문 ‘부산 어워드’
올해의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9월 17일부터 26일까지 열흘간 부산 영화의전당 일대에서 열리는 가운데 상영작은 총 328편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공식 초청작은 64개국 241편으로 지난해보다 17편 늘었다. 여기에 커뮤니티비프 87편, 동네방네비프 32편이 더해져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축제로 확장된다.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월드 프리미어’ 작품은 90편이다.
특히 3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공식 경쟁부문인 ‘부산 어워드’가 신설됐다. 아시아 주요 작품 14편이 초청돼 대상 감독상 심사위원 특별상 배우상 예술공헌상 등 다섯 개 부문에서 경합한다.
트로피는 태국 출신 거장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디자인했으며, 대상 수상작은 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상영된다.
경쟁작에는 임선애 감독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심은경 주연의 일본 영화 ‘여행과 나날’, 대만 배우 서기의 연출 데뷔작 ‘소녀’, 중국의 비간 감독 신작, 장률 감독의 ‘루오무의 황혼’, 스리랑카의 비묵티 자야순다라 감독 작품 등 아시아 거장과 신예들의 작품이 포진했다.
심사위원단에는 ‘곡성’의 나홍진 감독, 홍콩 배우 양가휘를 비롯해 국제 영화계 인사들이 합류했다.
◆ 위기의 한국영화, 그럼에도 재도약의 신호탄
한국영화의 오늘을 확인할 수 있는 라인업도 눈길을 끈다.
변성현 감독의 하이스트 영화 ‘굿뉴스’, 김병우 감독의 SF 블록버스터 ‘대홍수’, 하정우 주연의 ‘윗집 사람들’, 한소희·전종서 주연의 ‘프로젝트 Y’, 영화 ‘바람’의 스핀오프 ‘짱구’ 등이 기대작으로 관객과 만난다.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섹션에는 김덕중, 이광국, 유은정, 김진유, 최승우 등 신진 독립 감독 12명의 작품이 초청돼 새로운 목소리를 보여준다.
특히 새로운 영화제의 꽃, OTT 온 스크린 섹션 부문은 올해에도 핫하다. 앞서 언급한 ‘굿뉴스’와 ‘대홍수’ 두 편 모두 넷플릭스는 영화다.
여기에 노아 바움백 감독의 ‘제이 켈리’,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 캐스린 비글로의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등 9편을 출품했다.
시리즈 부문에는 한국작 ‘당신이 죽였다’, 일본의 ‘로맨틱 어나니머스’, 사무라이 서바이벌물 ‘이쿠사가미: 전쟁의 신’, 대만의 ‘회혼계’가 포함됐다. 디즈니플러스는 ‘탁류’, 티빙은 김유정 주연의 ‘친애하는 X’를 선보인다.
특히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K-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국내 최초로 싱어롱 버전 상영을 통해 관객과 특별한 만남을 예고한다.
◆ 세계 거장과 스타들의 향연
세계적인 거장과 스타들의 대거 내한도 예고됐다.
기예르모 델 토로, 자파르 파나히, 이상일, 마르코 벨로키오, 마이클 만, 줄리엣 비노쉬, 이병헌, 밀라 요보비치, 허광한 등이 부산을 찾는다.
특별 기획 프로그램 ‘아시아영화의 결정적 순간들’에는 지아장커, 두기봉, 차이밍량, 마르지예 메쉬키니, 한국의 이창동과 박찬욱 감독 등이 참여해 영화제의 위상을 높인다.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열리는 ‘2025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이 20일부터 23일까지 4일간 벡스코 제2전시장과 온라인 플랫폼에서 동시 개최된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에서는 혁신 기술과 영화·콘텐츠산업을 연결하는 ‘이노아시아’, 아시아 협력 플랫폼 ‘디 에이’, 다큐멘터리 공동제작 지원 ‘독스퀘어’, 국제 공동제작을 위한 ACF 공동제작 지원 펀드 등 새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한때 급변하는 OTT 시장의 부상은 영화제의 존재 이유를 위협하는 듯 보였다. 내부 시선도 곱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이야기는 하나로 모였다.
플랫폼의 경계가 흐려진 지금, 영화의 바다는 여전히 같은 정체성을 품고 있다. 30주년을 맞은 부산의 풍경이 그것을 증명한다. 올해 상영작을 모두 합치면 328편, 역대 최대 규모다. 바다는 더 넓어졌고, 관객은 그 물결 속에서 더욱 다양한 항해를 경험할 수 있게 됐다.
올해의 한국영화공로상 수상자는 정지영(79) 감독이다. 개막식 사회자는 배우 이병헌이다. 역대 최초 남성 단독 사회자로 그 의미를 더한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30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이 세계적인 영화도시로 성장해 온 발자취이자, 앞으로의 30년을 향한 새로운 출발점”이라며 “시민과 영화인이 함께 만든 성과를 기반으로 한국 영화의 재도약과 아시아 영화의 연대를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