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수박, 4월 복숭아… 더위 먹어 ‘철없는 과일’

6 hours ago 4

[토요기획] 기후변화가 바꾼 제철 과일
온난화로 당도 높은 봄 수박 수확 늘어
감귤 등 아열대 과일 재배지도 2배 증가

지난달 28일 전북 고창군에 있는 박형남 씨의 수박 농장에서 봄 수박이 자라고 있는 모습. 기후변화로 수박 재배 시기가 2월 초까지 앞당겨지며 봄 수박을 재배하는 농가가 늘어나고 있다. 롯데백화점 제공·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28일 전북 고창군에 있는 박형남 씨의 수박 농장에서 봄 수박이 자라고 있는 모습. 기후변화로 수박 재배 시기가 2월 초까지 앞당겨지며 봄 수박을 재배하는 농가가 늘어나고 있다. 롯데백화점 제공·게티이미지뱅크
“3월 중순에나 심던 수박을 이제는 2월 초에도 심습니다. 점점 여름의 시작이 빨라지는 것 같아요.”

지난달 28일 전북 고창군에서 만난 박형남 씨(68)가 수확을 앞둔 수박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약 20년간 수박 농사를 지어온 박 씨는 최근 들어 수박 재배 시기를 앞당기고 있다고 했다. 올해 첫 모종은 2월 9일에 심었고, 5월 중순 수확을 앞두고 있었다. 박 씨는 “원래 이 동네는 2월까지도 눈이 엄청나게 많이 오던 곳”이라며 “하지만 최근엔 겨울 기온이 상대적으로 따뜻해지면서 봄 수박 키우기가 훨씬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국내 ‘제철 과일 지도’가 달라지고 있다. 과일의 재배 시기와 출하 시기가 앞당겨지고 산지 역시 과거보다 북상하거나 이동하면서다. 유통업계는 기후변화로 달라지는 산지 구조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 산지와의 협업을 강화하며 프리미엄 과일 선점 경쟁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28일 전북 고창군에 있는 박형남 씨의 수박 농장에서 봄 수박이 자라고 있는 모습. 기후변화로 수박 재배 시기가 2월 초까지 앞당겨지며 봄 수박을 재배하는 농가가 늘어나고 있다. 롯데백화점 제공·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28일 전북 고창군에 있는 박형남 씨의 수박 농장에서 봄 수박이 자라고 있는 모습. 기후변화로 수박 재배 시기가 2월 초까지 앞당겨지며 봄 수박을 재배하는 농가가 늘어나고 있다. 롯데백화점 제공·게티이미지뱅크

●봄에 더 단 수박, 봄부터 먹는 복숭아 봄 수박은 이전부터 ‘프리미엄’이 붙는 상품이었다. 수박은 수정 후부터 수확까지 일평균 기온의 합이 1000도에 도달해야 완숙되는 ‘적산온도 1000도의 법칙’을 따른다. 한여름 수박이 약 30∼40일 만에 빠르게 익는 것과 달리 봄 수박은 완만한 기온 상승 속에서 약 100일 동안 천천히 온도를 축적하며 숙성된다. 이 과정에서 과육 조직이 치밀해지고 당분이 충분히 쌓이면서 여름 수박 대비 당도가 통상 2∼3Brix(브릭스)가량 높게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동안 농부들은 비싸고 맛있는 봄 수박 키우기를 주저했다. 2월에 수박 모종을 심으면 온풍기를 틀어야 할 정도로 봄이 추웠기 때문이다. 꽃샘추위 등으로 인한 피해를 볼 가능성도 높아서다. 박 씨는 “7년여 전까지만 해도 봄 수박은 마진조차 남지 않는 농사였다”며 “당시에도 조금 일찍 수박을 심어보려 했지만, 밤에는 모종 위에 이불을 덮어주고 온풍기를 돌리지 않으면 다 얼어 죽을 정도로 날이 추웠다”고 회상했다.

최근 들어 최근 농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겨울이 짧아지고 봄이 길어지며 2월 평균 날씨가 온화해진 덕이다. 기자가 방문한 박 씨의 수박 농가 비닐하우스는 환기를 위해 모든 문을 열어놨음에도 이미 내부 온도가 30도에 육박하고 있었다. 박 씨는 “요새는 비닐하우스 위에 검은색 부직포를 덮어주는 정도만으로도 일교차를 충분히 버틸 수 있을 만큼 재배 환경이 달라졌다”고 했다.

국내 백화점들은 최근 생산이 늘어난 고당도 ‘봄 수박’ 확보를 위한 경쟁에 나서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2024년 본점과 잠실점 등 주요 점포 7곳에서 ‘봄 수박’을 팝업 형태로 처음 선보인 후 올해부터는 고창군과 손잡고 ‘명품 고창 봄 수박’을 정식으로 유통하기로 했다. 박 씨가 재배한 봄 수박 역시 롯데백화점을 통해 판매될 예정이다. 현대백화점도 지난해 온라인 식품관 투홈에서 ‘고창 명품 수박’ 기획전을 진행한 바 있다. 기후변화는 ‘제철 과일 달력’을 뒤흔들고 있다. 전형적인 여름 과일로 여겨졌던 복숭아도 최근 4월부터 11월까지 즐길 수 있게 되며 사실상 계절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이달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간한 ‘2026년 주요 과일 개화 상태’ 보고서에 따르면 복숭아의 개화 시기는 3월 말∼4월 초 기온 상승으로 전년보다 빨라졌다. 최대 주산지인 영남 지역의 경우 전년 대비 1∼2일가량이, 그 외에는 1∼3일가량이 앞당겨진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복숭아 개화량 역시 전년 대비 36.5% 늘어났다. 늦여름·초가을 복숭아 출하 물량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9월 복숭아 출하 비중은 전년 대비 27.9% 증가했다. 고재훈 롯데백화점 청과&채소 바이어는 “예전에는 제철 자체가 중요했다면 최근에는 계절 경계가 모호해진 과일이 늘면서 당도와 품질을 더 중요하게 보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가 과일 산지 바꾼다

산지 이동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국내 기온이 세계 평균보다 빠르게 상승하고 있어서다.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30년(1991∼2020년)간 한국의 연평균 기온은 12.8도로 과거 평년(1912∼1940년) 대비 약 1.6도 상승했다. 전 세계 평균 상승 폭이 1.09도임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빠르게 기온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체감온도 35도를 넘어서는 강도 높은 폭염 역시 최근 10년(2014∼2023년) 연평균 5.11일로 앞선 10년 대비 2배 이상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이상 고온 현상이 반복될 경우 국내 과일 재배 적지 지도가 확연하게 달라질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이 국민의힘 조승환 의원실에 최근 제출한 ‘기후플레이션 대응 중장기 계획’ 자료에 따르면 기후변화 시나리오(SSP)에 따라 국내 주요 과일과 채소 재배 적지가 크게 변화할 것으로 전망됐다. 분석은 친환경 중심의 SSP1부터 화석연료 사용이 극대화된 SSP5까지 총 5개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진행됐다.

먼저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과일은 사과로 조사됐다. 원예원은 과거 30년과 비교해 사과 재배 적지와 재배 가능지가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SSP5 시나리오에서는 2090년대에 국내 사과 재배 적합 지역이 사라지고 인제, 고성 등 강원 북부 및 산간 등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가 가능할 것으로 분석됐다. 배의 경우 총 재배 가능지 면적이 소폭 증가하다가 2050년대부터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특히 2090년대에 접어들면 배를 재배하기 적합한 지역이 현재 남부 지방 중심에서 중부지역으로 북상하는 경향을 보였다. 포도 역시 고온 현상으로 인해 고품질 재배가 가능한 ‘재배 적지’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아열대 과일 재배지는 빠르게 북상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아열대 과수 재배 면적은 2017년 109.5ha(헥타르·약 33만 평)였지만, 2023년에는 221.1ha(약 67만 평)로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감귤은 현재 제주도 중심 재배 구조에서 벗어나 미래에는 남해안과 강원도 해안 지역까지 재배 한계선이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키위 역시 2090년대에는 강원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재배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에 따라 망고를 비롯해 석류, 비파, 패션프루트 등을 재배하려는 농가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원예원은 해당 보고서에서 “기후 정보 및 기후 적응형 품종 개발과 생산기술의 현장 활용 등 원예농산물의 생산여건 악화에 대비해 중장기적으로 수급을 안정화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지 발굴에 분주한 유통업계

유통업계도 기후변화가 야기한 제철 과일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새로운 산지를 발굴해 물량을 확보함으로써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과일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산지 전담 바이어 제도를 통해 직매입 물량을 늘리고 있다. 이들은 전국 산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우수 산지와 생산자를 발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봄 수박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신세계백화점 역시 바이어가 전국 각지를 돌며 직접 지정 산지를 선정하는 ‘신세계 셀렉트팜’ 상품을 다양화하고 있다.

과일 산지 발굴과 함께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업도 강화하고 있다. 지리적 표시제를 등록하기 위해 지자체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교육과 품질 검증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식이다. 지리적 표시제는 특정 지역에서 생산된 우수한 농산물에 지역명을 표시할 수 있도록 등록하고 보호하는 제도다. 각 지자체는 이를 위해 농가를 대상으로 재배 교육을 진행하고 재배 과정부터 수확 후 당도 검사까지 자체적인 인증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해원 롯데백화점 청과&채소 치프 바이어는 “유통업체는 유통 마진을 줄이며 고품질 과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지자체는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는 ‘상생 구조’를 구축한 셈”이라며 “이상 기후로 재배가 어려워진 사과의 경우 태백, 정선, 평창 등 고지대에서 생산한 사과를 확보하고 신품종인 이지플, 아리수 사과를 명절 선물로 기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