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전자 쓸어담은 한국의 버핏 …"향후 10년은 금·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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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6만전자 쓸어담은 한국의 버핏 …"향후 10년은 금·반·지"

입력 : 2026.06.22 17:04

한국의 위대한 투자자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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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플러스 '한국의 위대한 투자자' 시리즈 세 번째 주인공은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이다. 그는 한국 최초의 가치주 펀드를 만들고 가치투자 문화를 대중화한 인물이다. '한국의 워런 버핏' '가치투자의 대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정작 그는 자신을 "겁이 많은 투자자"라고 소개한다.

39년 동안 자본시장을 지켜온 그의 투자 인생을 관통하는 단어는 공격보다 방어, 수익보다 생존이었다. 그리고 그 소심함이 오히려 한국 가치투자의 역사를 만든 원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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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고난 소심함에 '잃지 않는 투자'

1964년생인 이채원은 어릴 때부터 안정적인 삶을 선호했다. 돌도 되기 전 기어다닐 때 마당 평상 위에 올려놓아도 그는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이 무작정 기어다닐 때 그는 턱을 확인하고 뒤로 물러섰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는 용돈을 여러 곳에 나눠 보관했다. 위험을 피하고 분산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1988년 한신증권에 입사한 그는 곧 주식의 매력에 빠졌다. 상장기업 종목 코드를 외우고 투자설명서를 끌어안고 잠들 정도로 주식에 몰두했다. 업계에서는 그를 '주식에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다. 운전면허도 없고 골프도 치지 않았다. 주말은 가족과 보내고 평일에는 오직 기업과 주식만 생각했다.

1990년대 초 일본 도쿄사무소 근무 시절에는 일본 투자 서적을 탐독하며 기업가치와 내재가치 개념을 익혔다. 단순히 주가 흐름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본질을 분석하는 투자에 눈뜨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이채원 투자 철학의 전환점은 IMF 외환위기였다. 동원투자신탁운용에서 펀드를 운용하던 그는 코스피가 57% 폭락하는 동안 40% 손실에 그치며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회사는 성과급을 지급했지만 그는 기쁘지 않았다. "고객 입장에서는 원금이 40% 사라진 것입니다." 그 무렵 벤저민 그레이엄의 투자철학이 담긴 '현명한 투자자'를 읽었다. "첫째, 돈을 잃지 말라. 둘째, 첫 번째 원칙을 잊지 말라"는 문장은 이채원의 투자관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후 그는 시장을 맞히는 것보다 손실 가능성을 줄이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1998년에는 국내 최초 가치주 펀드인 '동원밸류 이채원 펀드'를 선보였다. 펀드는 폭발적인 성과를 냈고 금융권에서는 스타 펀드매니저가 탄생했다며 주목했다. 하지만 곧 정보기술(IT) 버블이라는 거대한 시험대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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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 버블 속 원칙을 지키다

1999년부터 인터넷과 통신주가 폭등하자 투자자들은 가치주를 외면했다. 시장에서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기대가 넘쳤다. 하지만 이채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롯데칠성, 삼성화재, 한국전력 같은 전통 가치주를 고수했다.

수익률은 시장을 밑돌았고 고객들 항의도 이어졌다. 기술주를 사지 않으면 펀드를 환매하겠다는 압박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원칙을 버리지 않았다. "가치투자 펀드인데 가치투자를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결국 IT 버블이 붕괴하면서 시장은 다시 기업가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 경험은 가치투자에 대한 그의 확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2006년에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설립을 주도하며 "10년 이상 기다릴 투자자만 오라"는 파격적인 메시지를 내걸었다. 단순히 펀드를 만든 것이 아니라 장기 투자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

이후 '이채원의 가치투자'를 출간하며 가치투자의 대중화에도 앞장섰다. 라이프자산운용 공동 설립자인 강대권 대표와 최준철·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 등 수많은 후배 투자자가 그의 영향을 받았다.

1999년 동원밸류 이채원 펀드 전단지.

1999년 동원밸류 이채원 펀드 전단지.

◆ 밸류트랩 넘어 가치투자 2.0으로

하지만 가치투자의 대부에게도 암흑기는 있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코로나19 직전까지 이어진 '밸류트랩' 시기다. 성장주와 플랫폼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는 동안 가치주들은 실적이 좋아져도 주가가 오르지 않았다.

특히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가치투자자들에게 큰 고민거리였다. 좋은 기업을 찾아도 낮은 주주환원 정책과 지배구조 문제 때문에 적정 가치가 인정받지 못했다. 이채원은 당시를 "가치투자의 한계가 아니라 시장 구조의 한계를 절감한 시기"라고 회상한다.

힘든 시기를 보낸 그는 2021년 남두우·강대권 대표와 함께 라이프자산운용을 설립했다. 단순히 싼 주식을 찾는 것을 넘어 상법 개정, 주주권 강화, 지배구조 개선 등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투자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과거에는 기업의 실적과 자산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그 가치가 실제로 주주에게 돌아가는지까지 살피는 데 주력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라이프자산운용의 대표 펀드인 '라이프한국기업ESG향상'(2021년 7월 말 설정)은 올해 5월 말 기준 누적 수익률 406%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152%)을 크게 웃도는 성과다. 운용자산(AUM) 규모도 빠르게 성장해 지난달 말 5조원을 넘었다.

◆ 이채원이 말하는 '금반지 10년'

이채원은 현재 한국 증시가 역사적 변곡점에 들어섰다고 평가한다. 상법 개정 논의와 기업 밸류업 정책, 자사주 소각 확대 등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이유에서다. "예전의 한국 주식과 지금의 한국 주식은 다른 자산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가 대표적인 투자 사례로 꼽는 종목은 삼성전자다. 시장이 반도체 업황 둔화를 우려하던 시기에도 그는 삼성전자의 장기 경쟁력과 인공지능(AI) 시대 수혜 가능성에 주목하며 6만원대부터 꾸준히 매수했다. "좋은 기업이 일시적으로 싸질 때가 가장 좋은 투자 기회입니다."

그는 앞으로 10년 유망 업종으로 금융·반도체·지주회사를 의미하는 '금반지'를 꼽았다. 금융주는 주주환원 확대, 반도체는 AI 혁명, 지주회사는 지배구조 개선의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최근 증시 급등을 두고 과열 우려가 제기되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비교적 낙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오랫동안 저평가됐던 한국 기업들의 가치가 정상화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채원은 개인투자자들에게도 단기 매매보다 기업가치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좋은 기업을 적정 가치 이하에서 샀다면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불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 시간은 좋은 기업의 편입니다."

타고난 소심한 소년은 한국 가치투자의 역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주주가치 강화라는 새로운 변화 속에서 또 다른 가치투자의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 '한국의 위대한 투자자' 시리즈는 한국 투자 업계 살아 있는 전설들의 인물 스토리와 투자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인터뷰 전문은 프리미엄 재테크 콘텐츠 플랫폼 '매경플러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최재원 기자 / 사진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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