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생·취준생 'AI 열공'
대치동 'AI 입시 설명회'
생활기록부 AI 활용법부터
대학 맞춤형 프롬프트까지
수십만원 설명회 문의 쇄도
기업들 '스펙보다 AI'
AI 단순 활용에서 벗어나
설계·검증 능력까지 요구
준전문가 과정 수강 급증
"대치동 SKY 합격생들이 고등학교 5학기 동안 제출한 보고서는 평균 94개였어요. 학기당 20개씩 보고서를 쓴 거죠."
입시 컨설턴트 A씨의 말이 끝나자 학부모 30여 명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A씨가 "그렇기 때문에 기술·가정 등 선택과목 보고서를 쓸 때는 챗GPT를 이용해 빨리 끝내버리는 게 유리하다"고 말하자 학부모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필기를 하기 시작했다. 최근 서울 대치동에서 열린 '인공지능(AI) 시대 입시 전략 설명회' 풍경이다.
AI를 모르면 입시도, 취업도 밀린다는 불안감이 학생·학부모와 청년층에 퍼지고 있다. 26일 찾은 대치동 학원가는 온통 AI 열기로 가득했다. 입시 설명회도 단순히 입시 전략을 설명하는 자리가 아닌 AI를 사용해 학교 생활기록부 세부 특기사항을 쓰는 방법, 중고등학교 탐구보고서를 작성하는 방법을 상세히 안내해야 학부모들의 눈길을 끌 수 있다.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 임 모씨(48)는 "원래 아들이 챗GPT를 사용하는 데 거부감이 있었는데, 유명 학원에서도 AI를 쓰는 게 더 좋다고 하니까 아이에게도 권하려 한다"고 전했다.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이 지난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서울 지역 중고등학생 2만6531명 중 94.6%가 '챗GPT, 제미나이, 뤼튼, 코파일럿 등 생성형 AI를 활용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고등학생은 활용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96%를 넘었다.
서울 강남구 소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 모군(19)은 수행평가나 탐구보고서에 챗GPT나 제미나이를 곧잘 사용한다. 김군은 "경영학과 관련 탐구 주제를 추천해달라거나, 관련 논문을 찾아 요약해달라는 식으로 이용한다"며 "그대로 복사해 제출하는 것만 아니면 들킬 염려가 없어 친구들도 자주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입시 컨설팅 학원들은 3회에 20만~30만원을 받고 AI 사용법 설명회를 열고 있다. 비싼 가격에도 학부모들 문의는 끊이지 않는다. 대학별 맞춤 프롬프트 작성법, 탐구보고서 자료 조사, AI 표절 검사기에 감지되지 않는 법 등 다양한 활용법을 지도하기 때문이다.
국어학원에서도 'AI를 활용한 토론대회 대비법' 설명회를 연다. 입시 컨설턴트 한 모씨(51)는 "학생들이 이미 AI에 익숙한 만큼 더 효과적인 활용 전략을 알려주는 것"이라며 "과제 시간이 절약되고 완성도가 뛰어나 학생과 학부모 모두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지난 19일 발표한 생기부 기재 요령에서 서술형 항목을 학생에게 작성하게 하거나, 생성형 AI가 만든 자료를 그대로 입력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수행평가는 '수업 중 실시'를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입시 전문가들도 생기부 관리에 AI를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일반고 학생들이 마치 과학고등학교나 영재고등학교 학생들 수준의 결과물을 만든 것처럼 세부 특기사항을 작성하기 쉽다"며 "이런 경우에는 신빙성을 의심하기 쉬워 추천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임은선 서울대 미래교육혁신센터 연구원은 "학생들의 생성형 AI 활용을 완벽히 막을 방법이 없다"며 "교육 당국의 협조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채용 방식 역시 변화하고 있다. 과거 학력과 스펙 중심의 응답형 면접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그룹·토론 면접을 통해 논리 구성 능력과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질문을 설계하는지를 평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신입에게도 사실상 '준경력자' 수준의 스펙을 요구하는 것이다.
최근 공공기관 취업정보 박람회에 참여한 취업준비생 정 모씨(26)는 "모의면접에서 'AI를 활용해 기관의 고객관리 혁신 방안을 제시하라'는 질문이 나왔다"며 "단순히 AI로 자동 응답을 도입하겠다는 수준이 아니라 야간·주말 응대 공백 해소 같은 구체적 상황을 설정하고, 동시에 AI 활용의 장단점과 답변 오류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지까지 답해야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조언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AI 관련 역량을 쌓는 게 필수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머신러닝을 활용한 소프트웨어 구현과 결과 검증·버전 관리 등을 포함한 취업 교육과정도 나왔다. 이흥연 휴먼AI교육센터 수원지점 팀장은 "단순 활용을 넘어 준전문가급 수준의 교육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수강생 가운데 60~70%는 취업용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한 신규 진입자들"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AI 발전에 따라 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을 미루고 경력직을 선호하는 추세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경고한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초보자가 있어야 경력자도 만들어지는 구조인데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노동시장의 토대가 약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피지컬 AI까지 확산되면 일자리 구조 변화가 더 커질 수 있다"며 "인간 중심 노동에서 AI 중심 노동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공존 방법을 논의할 사회적 대화나 정책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자경 기자 / 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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