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칸막이에 갇힌 교육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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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호 유미과학문화재단 이사장은 지난달 30일 인터뷰에서 “교사들도 전공 간 벽을 허물고 ‘지식의 전달자’에서 ‘지식의 연결자’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경덕 기자

송만호 유미과학문화재단 이사장은 지난달 30일 인터뷰에서 “교사들도 전공 간 벽을 허물고 ‘지식의 전달자’에서 ‘지식의 연결자’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경덕 기자

“인공지능(AI)은 지식을 칸막이로 구분짓지 않습니다. 더이상 융합 교육을 미룰 수 없는 이유입니다.”

지난달 30일 서울 역삼동 유미특허법인에서 만난 송만호 유미과학문화재단 이사장은 과학과 철학을 아우르는 융합 교육의 필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송 이사장은 이력 자체가 ‘통섭’이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첨단 과학 분야 특허를 다루는 변리사가 됐고, 대학 동기인 김원호 씨알재단 이사장과 1981년 유미특허법인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100여 명의 변리사와 변호사를 둔 국내 최대 특허법인으로 성장했다. 송 이사장은 2014년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유미과학문화재단을 설립한 이유다. “촛불집회부터 종교 간 대립까지 사회적 갈등이 극에 달하던 때였어요. 왜 인간은 끊임없이 갈등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됐습니다. 과학에 기반해 인간의 근원을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간은 왜 갈등하는가’에 천착

이 같은 고민은 그를 ‘빅 히스토리(Big History)’로 이끌었다. 빅뱅에서 출발해 지구의 형성과 생명의 탄생, 인간의 진화까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송 이사장은 “물리학·지구과학·생명과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나만 잘났다’고 말하는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깨달았다”며 “인간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시작되면서 우리가 양 극단에 서서 싸우는 정치·종교·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송만호 유미과학문화재단 이사장이 집필에 참여한 <사피엔스의 깊은 역사>

송만호 유미과학문화재단 이사장이 집필에 참여한 <사피엔스의 깊은 역사>

결국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선 통섭적 융합 교육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학과 단위가 공고하고, 학문 간 칸막이가 높은 한국의 교육 환경에서는 쉽지 않았다. 송 이사장은 먼저 교과서를 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문가들과 함께 <사피엔스의 깊은 역사>, <융합지성사>라는 책을 집필한 배경이다. 송 이사장은 “융합 교과서는 한 사람이 쓸 수 있는 영역이 아니고, 학문 간 검증도 필요하다”며 “관련 분야 학자들과 협업해 교과서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도전이었다”고 설명했다.

송만호 유미과학문화재단 이사장이 집필에 참여한 <융합지성사>

송만호 유미과학문화재단 이사장이 집필에 참여한 <융합지성사>

교과서가 제작되자 학교 현장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학문 단위를 초월한 융합교육을 실현하겠다는 취지에서 지난해 출범한 서울대 학부대학에서 <융합지성사>를 교재로 한 수업이 개설됐고, 서울 하나고 등 명문 자립형 사립고에서도 <사피엔스의 깊은 역사>를 교재로 수업을 하는 교사들이 등장했다. 지난해부터 고교학점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융합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 이수하도록 하는 제도로, 획일적인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다양한 학문을 넘나드는 학습을 가능하게 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지식 연결 능력’이 경쟁력

송 이사장은 AI 시대를 맞은 지금이 한국 교육이 학과 간 칸막이를 넘어 융합 교육으로 전환할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그는 “지식 전달의 속도·정확성·다양성 측면에서는 절대 AI를 따라갈 수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이 아니라 지식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여기서 통찰을 얻는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교사의 역할도 ‘지식의 전달자’에서 ‘지식의 연결자’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고교학점제 도입 이후 학교 현장에서 융합 과목을 가르칠 교사가 없으니, 융합 교육을 전담할 신규 교사를 채용해 달라는 목소리가 높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교사 연수와 재교육을 통해 융합 교육의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 이사장은 “지식을 쪼개 가르치는 교육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지식을 연결하는 교육으로 전환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며 “그 결정이 한국 교육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고 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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