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주요 사립대학 경제학과 교수 A씨는 최근 학생들의 발표를 보며 깜짝 놀랐다. 기업 현장에서 볼 법한 수준급 프리젠테이션 자료에 어려운 경제학 모형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서다. 하지만 놀라움도 잠깐, 질의응답을 시작하는 순간 환상은 깨졌다. 그는 “요즘 학생들은 다양한 생성형 AI를 활용해 PPT는 물론 스크립트까지 완벽하게 준비한다”며 “발표 내용은 상향 평준화됐지만, 질의응답에 들어가면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드러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마감 당일에 AI로 급조
대학가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것이 일상이 되면서 교육 방식과 평가 시스템에 대한 대학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많은 대학이 대면·구술 평가를 확대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학생들의 AI 활용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조별 과제의 의미도 퇴색되고 있다. 서울의 또 다른 주요 사립대학 이과계열 학생 B씨는 조별과제를 준비하다가 자괴감을 느꼈다. 6명의 학생이 모여 과제를 하는데, 모두가 당일 AI를 통해 급조한 내용을 공유하는 상황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B씨는 “6명이 서로 다른 의견을 공유하고 토론해야 할 조별과제가 각자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취합하는 작업으로 변질됐다”고 털어놨다.
교수들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다. 국립대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개론 수업을 하는 교수 C씨는 이번 학기부터 과제 점수 비중을 확 낮추기로 했다. 과거에는 과제를 중심으로 학생들의 실력을 평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학생들의 결과물을 봐도 AI를 활용한 것인지 학생이 직접 한 것인지 판단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전에는 프로그래밍 문법이나 구현 디테일을 많이 물었다면, 최근에는 ‘스택’과 ‘큐’의 차이처럼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묻고자 한다”며 “학생이 제출한 코드를 실제로 이해하고 있는지 일 대 일 구술 형태로도 확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존의 중간·기말고사 중심의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수업 시간에 수시로 질문을 던지고 토론하는 모습을 상시 평가하는 시스템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활용했는지 평가해야”
과제를 하는 과정에서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경우도 생겼다. 교무처장을 맡고 있는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수능 중심 입시가 정의로운지를 분석하라’는 중간 과제를 내주면서 AI 활용을 허용했다. 대신 학생들이 AI와 주고받은 프롬프트(지시문)와 수정 과정도 함께 제출하도록 했다. 배 교수는 “단순히 질문 요령만 익히는 수준을 넘어, 여러 AI를 교차 검증하며 정보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절대평가가 일반화된 해외 대학에서는 AI가 ‘학점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UC버클리 연구진이 2018년부터 2025년까지 텍사스 내 한 대형 공립대의 성적 데이터 50만건을 분석한 결과, 2023년 이후 AI 의존도가 높은 학과에서 A학점이 30%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AI 활용이 쉬운 글쓰기·코딩 중심 과목에서 변화가 두드러졌다. 집에서 하는 과제 평가 비중이 큰 수업일수록 A 학점을 받을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고재연/이미경/최영총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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