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결정은 언제나 어렵다. 원칙대로 하자니 너무 엄격하고 융통성 없어 보이고, 그때그때 상황을 보며 결정하자니 끊임없이 의구심이 든다.
캐스 선스타인의 신간 <결정력 수업>은 '결정'이라는 행위를 경제학과 심리학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인 저자는 법학자이자 행동경제학자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예산관리처 규제정보국장을 역임하며 규제 정책을 총괄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리처드 탈러와 공동 집필한 <넛지>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인간이 잘못된 선택을 두려워하고 최선의 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뭘까. 책은 이 질문에 결정은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지"를 정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책을 관통하는 개념은 '이차적 결정'이다. 이차적 결정이란 '결정에 관한 결정'이다. 결정을 내리는 방법이나 전략을 선택하는 행위를 뜻한다. 어떤 기준이 되는 규칙을 세우거나, 판단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위임 모두 이차적 결정이다. 심지어 운에 맡기는 '뽑기'도 이차적 결정 중 하나다. 저자는 "이 책의 목표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여러 이차적 결정을 파악하고, 그 가운데 어떠한 전략이 가장 좋을지를 알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가' 만큼 '어떤 정보를 구하느냐'도 중요한 문제다. 사람이 어떤 정보를 습득할지 선택하는 행위도 일종의 결정이다. 정보는 사람을 슬프게도 만들기도, 기쁘게 하기도 한다. 저자는 정보에서 예상되는 정서적 반응이 우리가 정보를 얻을지, 회피할지를 정하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고 말한다. 사람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하고, 알게 되면 기분이 나쁠 것 같은 정보는 피하고 무지의 상태로 남길 선호한다는 뜻이다.
신념은 정보와 밀접해 있긴 하지만, 정보를 얻는 것과 그걸 믿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사람은 기존에 믿고 있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를 더 신뢰하기로 결정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기후변화와 정치 등 사회 이슈가 어딜가나 극단주의로 치닫는 이유도 편향성에 있다.
한 번 굳어진 신념은 잘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절대적인 건 아니다. 새로운 정보와 경험으로 신념이 뒤집어지는 경우도 많다. 저자는 신념이 하나의 '재화'와 같다고 주장한다. 신념의 가치는 그 믿음이 자신에게 주는 효용에 따라 결정된다. 신념의 효용은 크게 외적 결과와 내적 결과로 나뉜다. 외적 결과는 신념을 바탕으로 얻거나 잃는 돈과 지위 등이다. 신념으로 결정되는 자신감과 안도감은 내적 결과에 해당한다. 저자는 새로운 신념의 잠재적 가치(효용)가 기존보다 큰 경우 신념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책은 일상에서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어떤 함정과 모순에 빠지는지 보여준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사는 물건을 따라 사고, SNS가 시간 낭비인 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행위를 '결정'의 관점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이차적 전략의 하나로서 인공지능(AI)과 알고리즘이 지닌 활용성을 조명한다. AI가 인간보다 더 현명한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게 선스타인의 주장이다. AI를 통해 결정을 내리면 인간이 지닌 편향성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팁'이 담긴 자기계발서 같은 제목과 달리 <결정력 수업>은 '결정'을 심리학과 경제학의 관점에서 깊게 파헤치는 분석적인 책이다. 저자도 개인의 경험담과 성공 사례가 아닌 여러 연구 결과와 경제학, 심리학 이론을 근거로 제시한다. AI를 활용한 합리적인 결정을 옹호하면서도, 아무리 비합리적일지라도 개인의 주체적인 결정과 선택의 다양성을 존중하자고 강조하는 선스타인의 주장은 흥미롭다.
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