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라이트 부품만 편안하게 납품하며 살 수 있었지만 그렇게는 성장하기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이유도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으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였죠.”
지난 17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 기술연구소에서 만난 박영근 탑런토탈솔루션 대표는 “지금은 액정표시장치(LCD)가 차량 전장 디스플레이의 대세지만 4~5년 뒤엔 OLED가 빠르게 치고 올라올 것”이라며 “올해부터 OLED 소재와 부품, 장비 수직계열화를 본격화하고 자체 LCD 모듈도 양산하는 등 몸집을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유일 BLU 수직계열화 기업
2004년 경북 구미에 시작된 탑런토탈솔루션은 2006년부터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에 차량용 전장 부품 등을 납품하고 있다. 1989년 설립돼 위탁생산(OEM) 방식으로 TV·가전제품 케이스 등을 만들던 동양산업이 모태다.
헤드램프와 헤드업디스플레이(HUD),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내장재 등 자동차 전장 부품 등을 비롯해 휴대폰 외부 충격 보호용 부품인 스티프너와 대형 TV 가이드 패널 등 다양한 제품을 납품한다. 이 가운데 자동차 운전석 계기판 및 CID(차량용 정보안내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LCD의 핵심 부품인 백라이트 유닛(BLU)이 전체 매출액의 37%를 차지한다.
LCD는 각종 정보의 표시 소자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와 달리 자체 발광 능력이 없다. 외부로부터 공급받은 가시광선이 화소 단위로 투과도와 색상을 조절해 영상을 구현한다. 그 빛을 쏴주는 게 BLU다.
LG디스플레이는 이 회사 BLU에 디스플레이 패널을 얹어 조립·가공한 뒤 모듈 형태로 글로벌 자동차 기업에 납품한다. LG디스플레이의 차량용 LCD 모듈은 벤츠, BMW, 아우디 등 독일 고급 차 3사 및 현대차 고급 모델 등 하이엔드 차량에 주로 들어간다.
전체 매출에서 LG디스플레이와 LG전자 등 LG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82%다. 이버지대부터 이어온 LG그룹과의 인연이 현재까지 이어진 결과다. 부친인 박용해 회장은 1989년 동양산업을 창업한 뒤 LG전자에에 TV용 사출 제품을 납품했다. 박 대표 역시 LG디스플레이에 입사해 8년가량 기술영업 경력을 쌓았다.
2004년 아버지의 부름을 받은 박 대표는 회사의 전신인 ‘탑앤양지’를 맡으며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부친이 LG와 거래하며 ‘깐깐한 기술력’과 ‘신뢰’를 경영철학으로 삼았던 덕에 현재 LG디스플레이 협력회장을 맡을 정도로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이 BLU를 직접 설계하고 제조하는 기업는 탑런토탈솔루션이 유일하다. 대부분 업체가 중국산 BLU 소재와 부품을 수입한 뒤 가공해 제조사에 납품한다. 박 대표는 “제품 설계부터 제조, 공급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뤄야 원가를 낮추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며 “시장을 선점한 저가 중국산 BLU와 가격으로 경쟁하기 위한 가장 빠르고 강력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이 회사 매출은 5196억원으로 전년도(5138억원)에 비해 1.2%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개별 사업 부문을 보면 상황은 다르다. 지난해 전장 부품 분야 매출이 48%로 2022년 대비 22%가량 증가하며 회사의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
박 대표는 “고급 차의 경우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부터 계기판, 보조석과 뒷좌석 디스플레이까지 차 한 대에 7개의 디스플레이가 들어간다”며 “이런 추세 덕에 2029년까지는 LCD가 차량 전장 디스플레이 시장을 계속해 주도할 것으로 보고 있어 주력 매출 분야는 꾸준히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라이트 넘어 ‘LCD 모듈도 직접 수출’ 목표
탑런토탈솔루션의 중장기 목표는 자동차 전장 부품 매출 비중을 전체 매출의 70~80%로 늘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LG그룹에 BLU를 납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차량용 LCD 모듈’을 설계, 조립해 양산하는 단계까지 다가갔다.
고가 차량에만 들어가는 LG디스플레이의 LCD와 별개로 중저가 차량용 모듈을 직접 공급하게 되면 회사의 규모가 커질 기회가 생긴다는 판단에서다. 10인치 이상 고사양 차량용 디스플레이 시장에선 LG디스플레이가 지난해 26.5% 점유율로 4년 연속 세계 1위였지만, 전 세계 차량 디스플레이 출하량만 놓고 보면 여전히 중국 기업들이 51.7%를 차지하고 있다.
회사는 LCD 모듈 사업의 해외 판로를 현대차가 진출해 있는 인도와 베트남 시장으로 잡았다. 특히 인도는 아직 차량에 디스플레이가 거의 들어가지 않아 시장을 선점하기 좋은 나라다. 백라이트 유닛에 비해 LCD 모듈은 단가도 높아 매출 증대 효과가 클 것으로 박대표는 예상하고 있다. 1000억원짜리 부품 매출로 10%의 이익이 나도 100억원밖에 되지 않지만, 모듈로 1조원 매출을 올리면 2%의 이익률이라도 200억원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다.
LCD 모듈 생산을 위한 수직계열화도 완료했다. 박 대표는 “인도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출시되는 차종에 점차 LCD가 채택되고 있다”며 “현재 회사의 최대 생산 거점인 베트남에서 양산 준비를 마치고 2027년께부터 현실화할 수 있도록 현대모비스와 직접 거래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사업모델은 원래 상장 계획엔 모듈 사업이 없었난데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고 한다. 박 대표는 “상장 이후 한 여러 투자자가 ‘백라이트도 잘 만드는데 아예 모듈까지 해보는 건 어떻냐?’고 제안해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며 “회사의 중요 사업전략이 투자자들의 인사이트에서 시작된 상장의 긍정적 효과”라고 말했다.
◆‘OLED’ 소부장 기업으로 변신
탑런토탈솔루션의 또 다른 중요 사업 분야는 OLED다. 지난 2023년 애플 아이폰15 ‘스티프너’(OLED의 내구성을 강화하는 부품)와 ‘벤드 감압접착제’(PSA·연성회로기판을 구부렸을때 흠집을 막아주는 부품)를 양산해 납품했다. 최근엔 OLED 소자의 방열 방습을 돕는 핵심 부품인 ‘플레이트’ 개발해 모바일, 노트북 등 제품 최적화를 진행하고 있다.
회사는 상장 이후 올해 초부터 잇따라 OLED 관련 기업들을 자회사로 편입했다. 올해 초 약 180억원을 투입해 OLED 디스플레이 ‘광학보상장비’를 만드는 탑런에이피솔루션(구 에이피솔루션)을 인수했다. 광학보상장비는 디스플레이 밝기·색상을 균일하게 보정해 색감을 맞춰 생산수율을 높이는 장비다. 지난 3월 LG디스플레이에 정식 장비 업체로 등록했다.
자회사인 탑런에이피솔루션을 통해 스마트폰, 워치, 태블릿 등 모바일 OLED 디스플레이용 광학 보상 장비 공급을 시작해 차량용 OLED와 LCD 디스플레이 검사까지 검사장비 제품 라인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 9일엔 OLED 패널 제조에 사용되는 고순도 화학소재를 공급해온 진웅산업을 80억원에 자회사로 편입했다. 이 회사는 합성과 정제 기술에 강점을 지니고 있는 공정 소재 전문기업이다. LCD 모듈 사업과 마찬가지로 내년까지 OLED 소재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패널을 설계·제조하고 양산을 위한 검사까지 일괄 진행할 수 있는 수직계열화의 기반을 다지겠다는 목표다.
지난해 OLED 부품으로 거둔 매출은 BLU의 10분의 1 수준인 212억원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OLED 소·부·장 기업으로 전환하려는 이유는 시장 확대가능성 때문이다. 차량용 전장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OLED 점유율은 아직 15%로 LCD에 비해 낮다. 하지만 업계에선 2032년부터는 비중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는 OLED만큼은 중국과의 경쟁력에서 크게 앞서 있다고 했다. LCD와 TV 등은 중국 기업들이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많이 따라왔지만, OLED의 유기물 정착 기술 등 아날로그적인 기술력이나 경험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글로벌 차량용 OLED 시장 점유율의 경우 삼성디스플레이가 55.2%, LG디스플레이가 21%로 두 기업이 76%를 차지하고 있다.
박 대표는 “하이엔드용 LCD와 플라스틱 OLED(P-OLED)는 한국 기술력 수준이 여전히 뛰어나다”며 “우리가 충분히 치고 들어갈 시장과 기회가 남아있다. 중국과의 OLED 디스플레이 대결에서 우위를 차지하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