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兆단위 혈세낭비' 전철 밟는 경전철…누구를 위한 사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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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수요예측 뻥튀기’로 수천억원대 세금을 낭비한 용인경전철 사업에 대해 전임 시장 등의 200억원대 배상 책임을 인정하면서 지방자치단체의 무분별한 민간투자사업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용인경전철 외에도 의정부경전철, 부산 김해경전철, 월미바다열차 등 각종 인프라 사업이 ‘애물단지’로 전락한 상황에서 나온 이번 대법원 판결의 파급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 지자체장뿐 아니라 용역을 수행한 한국교통연구원에 대해서도 명확한 배상 책임을 인정해 향후 용역기관들의 수요예측 관행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내년엔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그동안 선거철마다 정부와 지자체 예산을 동원해 도로·철도 등을 새로 깔겠다며 유권자를 현혹하는 사례가 잇따랐던 만큼 이번 판결이 세금 낭비를 부르는 관행과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부산시와 김해시는 운영 적자를 보고 있는 부산김해경전철에 지난해에만 841억원의 보전금을 지원했다. 2011년 개통한 부산김해경전철의 이용객은 당초 예측의 4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다.   부산시 제공

부산시와 김해시는 운영 적자를 보고 있는 부산김해경전철에 지난해에만 841억원의 보전금을 지원했다. 2011년 개통한 부산김해경전철의 이용객은 당초 예측의 4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다. 부산시 제공

이용객 수 예측의 4분의 1

그래픽=허라미 기자

그래픽=허라미 기자

광역지자체 가운데 사회간접자본(SOC) 분야 민자사업이 가장 활발한 곳은 부산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유료도로를 보유하고 있다.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지형적 한계로 도로 건설비가 많이 들어 민간투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부산김해경전철을 비롯해 7개 도로 및 터널에 총 9804억여원의 재원을 투입했다. 이 중 운영사 수입을 보전하는 최소운영수입보장(MRG) 방식으로 3366억원, 이를 개선한 최소비용보전(MCC) 방식으로 4325억원을 지원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부산김해경전철은 수요예측 등의 절차에 하자가 없다는 판결이 이미 나왔다”며 이번 용인경천철 사업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2011년 개통한 부산김해경전철의 예측 수요는 하루 17만6000명이었는데, 실제 이용객은 지난해 4만5000명에 그쳤다. 부산시와 김해시는 작년에만 841억원의 운영비 보전금을 지원해야 했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BuTX(부산형광역철도), 오시리아선, 부산항 트램, 반송터널 등 대형 사업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부산시는 요금 인상 없이 민간에 재원을 지원하거나 아니면 요금을 인상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애물단지 된 전국 경전철

그래픽=허라미 기자

그래픽=허라미 기자

다른 지자체 상황도 마찬가지다. 의정부경전철은 2012년 개통 당시 하루 7만9000명 이용을 예상했지만 현재 4만 명 수준이다. 운영사는 2017년 파산했고, 지금은 새 사업자가 MCC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연간 약 100억원 적자가 난다. 2017년 개통 당시 하루 13만 명을 예상한 서울 우이신설선 이용객 역시 지난해 기준 7만5000명에 그쳤다. 누적 적자가 2000억원을 넘어선다. 서울시는 매년 운영비로 80억원가량을 보전해주고 있다.

인천에도 경전철은 아니지만 수요예측 실패로 장기간 적자를 떠안고 있는 사업들이 있다. 인천 월미산을 한 바퀴 순환하는 월미바다열차는 도심형 관광모노레일이다. 월미바다열차는 2019년 개통 이후 연평균 58억원 적자를 보고 있다. 6년 동안 총 348억원(감가상각비 포함)의 누적 적자가 발생했다. 적자의 원인은 저조한 평일 이용객과 전기료·인건비 인상 등이 꼽힌다. 주말에는 평균 1200여 명이 이용하지만 평일에는 590명대로 뚝 떨어진다.

더욱 극단적인 사례는 인천국제공항 자기부상열차다. 2006~2016년 정부가 주도한 ‘도시형 자기부상열차 실용화사업’의 일환으로 개발돼 국비 2174억원, 인천시 189억원, 인천공항공사 787억원 등 총 3150억원이 투입됐다. 일일 평균 3만 명 이상 이용을 예측했지만 2017년 2865명, 2019년 4012명에 이어 2022년에는 328명으로 감소해 결국 운행이 중단됐다.

물론 모든 지자체 사업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충남 예산군의 예당호 모노레일은 2022년 개통 후 지난달까지 누적 이용객 70만 명을 돌파했다. 총 80억원(도비 40억원, 군비 40억원)을 투입한 이 사업은 관광 활성화라는 명확한 목적과 적정 규모의 투자가 성공 요인이었다. 예산군 관계자는 “시설 투자는 공공이 주도하고, 운영은 민간 전문성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반복되는 혈세 낭비, 왜?

대규모 적자 인프라 사업의 배경에는 지자체장의 정치적 인센티브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4년마다 치러지는 지방선거에서 대형 인프라는 최고의 치적거리다. 경전철, 도로, 터널은 임기 내 가시적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효자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이는 ‘뻥튀기 수요예측’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지자체가 직접 용역을 의뢰하는 구조에서는 발주처가 원하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용인경전철 하루 이용객을 16만1000명으로 예측했지만 20년 후인 지난해에도 4만2000명에 그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용인경전철의 과도한 수요예측을 부추긴 것은 운영사 수입을 보전하는 MRG 방식에서 기인했다는 분석도 있다. SOC에 부족한 재원을 보충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였지만 부작용 때문에 2009년 폐지됐다. 예측량과 실제 이용량의 차이가 벌어지면 그 차액을 지자체나 정부가 보전하는 방식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MRG 방식에서는 손실이 나면 재정 지원이 이뤄지므로 수요량을 뻥튀기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며 “용인경전철 판결에서 법원이 혈세 낭비의 책임을 제대로 물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회경 동아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인프라를 완성시켜야 하는 지자체로선 투자자인 민간 입장을 최대한 수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사업 추진 과정에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것이 선심성 공약을 막고 장기적 안목의 인프라 계획을 수립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민건태/인천=강준완/예산=강태우 기자 mink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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