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가 연민이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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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가 연민이 될 때

입력 : 2026.06.07 16:26

연극 '타인의 삶' 재연
LG아트센터서 7월부터
초연 점유율 98% 화제

연극 '타인의 삶'의 2024년 초연 공연 사진. 프로젝트그룹일다

연극 '타인의 삶'의 2024년 초연 공연 사진. 프로젝트그룹일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동독, 한 비밀경찰이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극작가와 그 연인의 삶을 엿듣는다. 그들의 가장 내밀한 순간에 점차 귀를 기울이던 그는 어느새 임무마저 잊고 따뜻한 연민을 품게 된다. 한 인간의 변화 과정을 그린 연극 '타인의 삶'이 1년8개월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프로젝트그룹일다와 라이브러리컴퍼니가 제작하고 LG아트센터가 공동 주최하는 연극 '타인의 삶'이 오는 7월 1일 LG아트센터 서울 유플러스 스테이지에서 개막한다. 2024년 11월 초연 당시 객석 점유율 98%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은 작품의 재연이다.

원작은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함께 맡은 2006년 독일 영화로, 2007년 미국 아카데미와 2008년 영국 아카데미(BAFTA)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무대는 1980년대 동독이다.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살아온 슈타지 요원 게르트 비즐러가 극작가 게오르그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이자 배우인 크리스타-마리아 질란트를 감시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품은 거대한 감시 체제를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감청기 앞에 앉아 타인의 사랑과 예술, 두려움을 매일 기록하던 슈타지 요원 비즐러의 신념이 어떻게 조용히 무너져 내리는지를 따라간다. 비즐러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들을수록 자신의 신념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자각한다. 체제에 맞서 싸우지도, 무력하게 순응하지도 않은 채 자신들의 예술을 지켜가려던 두 사람의 순수한 열정이 냉혈한 감시자의 내면을 흔든다. 통일 후 우편배달부가 된 비즐러가 자신을 모델로 한 소설을 서점에서 펼쳐 보고 "이건 날 위한 겁니다"라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명장면으로 꼽힌다. 작품은 시대의 억압 속에서 타인을 향한 연민과 선한 의지가 어떻게 한 인간을 바꾸고, 나아가 또 다른 삶을 지켜내는 힘이 되는지를 깊이 있게 그린다.

많은 이들의 '인생 영화'로 꼽히던 작품을 무대로 옮긴다는 점에서 초연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모았다. 그러나 각색과 연출을 맡은 손상규는 영화의 절제된 정서를 살리면서도 중소극장 특유의 밀도와 긴장으로 작품을 다시 빚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손상규는 지난 5월 7일 LG아트센터 시그니처홀에서 막을 올린 안톤 체호프 원작의 '바냐 삼촌'으로 대극장 무대에도 도전했다.

캐스팅은 초연 배우와 새 얼굴이 어우러진 10인으로 꾸려졌다. 비즐러 역은 윤나무와 이동휘가 초연에 이어 다시 맡고, 드라이만 역에는 정승길과 장승조가, 크리스타-마리아 질란트 역에는 우정원과 임수향이 캐스팅됐다. 문화부 장관 브루노 햄프 역에는 초연 멤버 김정호와 새로 합류한 김수현이 이름을 올렸고, 그루비츠 역 이호철과 우도 역 박성민도 초연에 이어 참여한다.

사운드 카입, 무대 김종석, 조명 김형연, 의상 김환 등 주요 창작진도 다시 함께한다. 공연은 오는 9월 13일까지.

[구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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