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안팎 초고금리에 기업투자 위축
고숙련 인력 이탈로 노동력 부족 심화
민간 제조업 경쟁력 추락으로 이어져
러 중앙은행도 경기 둔화 공식 인정
표면적으로 러시아 경제는 서방 제재와 전시 부담 속에서도 예상보다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최근 이란 전쟁 장기화로 국제유가와 러시아산 우랄 원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 수익과 재정 여건도 빠르게 개선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 4년여간 러시아 경제는 전쟁 특수와 자원 수출 확대, 국가 주도의 군수 지출에 의존해 충격을 버텨왔지만 그 과정에서 민간 투자와 생산성, 노동력 기반은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는 경고가 국내외에서 동시에 나오고 있다.
가장 뚜렷한 둔화 신호는 성장 엔진의 급격한 냉각이다. 러시아 경제는 2023~2024년 군수 지출 확대에 힘입어 4% 안팎의 고성장을 이어갔지만, 최근 들어 전시 호황의 동력이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 최대 은행 스베르방크는 최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1.5%에서 0.5~1% 수준으로 하향 조정했다. 러시아 중앙은행도 2분기 성장률을 0.9%로 전망하며 경기 둔화를 공식 인정했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는 이를 두고 “전시 호황의 온기가 식고 본격적인 경기 침체 위험이 고개를 드는 단계”라고 진단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올해 초 발표한 보고서에서 러시아 경제가 2022년 ‘충격기’와 2023~2024년 ‘과열기’를 지나,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식는 ‘둔화 국면’에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민간 경제의 숨통을 죄는 가장 큰 요인은 한때 20%까지 치솟았던 초고금리와 그에 따른 투자 위축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블화 가치 방어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기준금리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렸다가 최근에도 15% 안팎의 고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고금리 환경은 단기적으로는 통화 방어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민간 경제를 옥죄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KIEP와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고금리 여파로 러시아 기업 대출은 크게 위축됐고, 군수 업체와 일부 전략 산업을 제외한 민간 기업들은 신규 투자를 줄이거나 보류하고 있다. 자금 압박과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기업들도 늘고 있다. 고금리와 제재가 겹치면서 설비투자와 생산성 개선이 동시에 둔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군수 중심 경제가 만든 왜곡도 심해지고 있다. 브뤼헐과 KDI 분석에 따르면 자본과 인력이 군수·안보 분야에 집중되면서 자동차, 항공, 고급 기계 등 복잡한 민간 제조업의 경쟁력은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서방의 제재로 핵심 부품과 기술 접근이 차단된 상태에서 생산과 품질이 동시에 후퇴하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여기에 전쟁 동원과 해외 이탈로 노동력 부족까지 심화됐다. 러시아의 생산성 기반은 IT·엔지니어 등 고숙련 인력 유출로 약화되고 있다고 머니컨트롤 등 외신은 지난 1월 보도했다. 실업률은 낮지만 이는 일자리가 많아서라기보다 노동력이 부족해 나타나는 ‘반쪽 호황’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임금은 오르는데 생산성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물가 압박도 다시 커지고 있다.
제성훈 한국외대 노어과 학과장은 “현재 러시아 실업률은 거의 제로 상태이지만, 이건 실제 고용이 잘 이뤄진 게 아니라 생산활동을 해야 할 사람들이 전선에 나가 파괴활동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부족한 노동력을 중앙아시아 이민자로 해결해 왔지만 이마저도 각종 사회 문제 발생으로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러시아 경제는 제재를 견디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군수 지출과 자원 수입, 국가 통제에 의존한 채 미래 성장잠재력을 갉아먹으며 버티는 구조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이란 전쟁과 중동 정세 악화는 러시아 경제에 일시적인 ‘재정적 인공호흡기’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고유가만으로 러시아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유럽 싱크탱크 브뤼헐은 “원유 수입은 재정 적자를 완화할 수 있지만 투자 위축과 노동력 부족, 기술 고립 문제까지 해결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제 학과장도 “러시아 경제는 더 버티기 어려워질 수 있었는데 이란 전쟁이 살려준 셈”이라며 “러시아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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