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유망 스타트업의 핵심 인재를 조직적으로 흡수해 사실상 기업을 인수하면서도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가는 변칙적 기업결합에 칼을 빼 들었다. 법인을 인수하는 대신 사람만 골라 채용하는 방식의 이른바 ‘애크하이어(Acqui-hire)’를 연내 기업결합 심사 대상에 포함해 벤처 생태계를 보호하겠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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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7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의 한 식당에서 진행된 출장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공정위) |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지난 7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국제경쟁네트워크(ICN) 연차총회 참석을 계기로 열린 출장기자단과 간담회에서 “기존 기업결합 심사는 핵심 인력 채용 부문에 대해 적용되지 않았다”며 “앞으론 핵심 인력을 채용하는 것도 기업결합 심사에서 다루도록 제도를 개선하려 한다”고 밝혔다.
애크하이어는 ‘인수(Acquisition)’와 ‘고용(Hiring)’의 합성어다. 자금력이 풍부한 대기업이나 플랫폼 기업이 경쟁 관계에 있는 스타트업의 기술이나 사업권 대신, 그 사업을 운영하는 핵심 인력과 조직을 통째로 영입하는 방식을 뜻한다. 사실상 영업을 양수하는 것과 다름없는 효과를 내면서도, 외견상으로는 단순 ‘인력 채용’ 형태를 띠고 있어 그간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기업결합 유형을 △주식취득 △임원겸임 △합병 △영업양수 △회사설립 참여 다섯 가지로만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력 중심의 조직 이전은 심사를 받지 않고도 경쟁 사업자를 시장에서 퇴출시키거나 유망 벤처의 성장을 가로막는 ‘킬러 인수’의 우회 통로로 활용돼 왔다.
이미 해외 경쟁당국은 이러한 변칙 인수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주 위원장은 미국과 유럽 등의 사례를 언급하며 글로벌 규제 공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와 유럽연합(EU)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인 ‘인플렉션 AI’의 공동 창업자와 핵심 인력 대부분을 고용하고 기술 사용료를 지불한 사건에 대해 사실상의 기업결합으로 보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공정위는 올해 상반기 중 ‘기업결합 신고 요령’ 고시를 개정해 인력의 조직적 이전이 영업양수와 맞먹는 효과를 내는 경우를 신고·심사 대상으로 명확히 규정할 계획이다. 연내 고시가 시행되면 대기업이 인재 가로채기를 통해 벤처기업의 독자적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행위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주 위원장은 “작년에 실시한 연구용역을 바탕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하려 한다”며 “K-엔비디아 같은 우리 벤처기업이 큰 기업의 공격적, 적대적 기업결합 전략에 희생되지 않고 성장할 수 있게끔 보호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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