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가 요구하는 ‘뜨거운’ 아이스크림 [이창훈의 경쟁법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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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 리포트

공정위가 요구하는 ‘뜨거운’ 아이스크림 [이창훈의 경쟁법인사이트]

이창훈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입력 : 2026.06.10 07:00

사진설명

국어사전은 ‘임의(任意)’를 “하고 싶은 대로 함”이라고 풀이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는 법적으로 임의조사다. 그런데 공정위 조사 현장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쪽이 누구인지 묻는다면, 적어도 피조사기업은 아니라는 데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국어사전을 만드는 분들이 공정위 조사를 참관했더라면 풀이가 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말뿐인 동의, 거부 없는 임의

법의 설계는 이렇다. 공정위는 검찰처럼 영장을 들고 오지 않는다. 공문을 들고 온다. 물리력으로 문을 열 수도, 서버를 뜯어갈 수도 없다. 조사는 어디까지나 기업의 ‘동의’를 전제로 한다. 영장 없는 조사가 헌법상 허용되는 근거도 바로 그 동의에 있다. 거부할 자유가 있으니 강제가 아니고, 강제가 아니니 법관의 통제도 필요 없다는 논리다. 다만 공문을 받아드는 기업의 표정이 영장을 받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이 설계의 첫 번째 미스터리다.

이 미스터리는 ‘거부할 자유’의 가격표를 보면 풀린다. 현장진입에 대한 고의적인 저지나 지연은 2012년부터, 자료의 은닉·폐기·접근거부는 2017년부터 각각 과태료를 넘어 형사처벌 대상이 되었다. 본안 혐의가 확정되기도 전에 조사방해만으로 고발된 사례도 있다. 요컨대 메뉴판에 ‘거부’라는 항목은 분명히 있다. 주문하면 형사처벌이 나올 뿐이다. 이것을 임의조사라고 부르는 것은, 출구가 잠긴 방을 두고 “나가지 않기로 동의하셨다”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조사현장의 풍경도 그렇다. 조사 첫날 기업 담당자가 변호사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이 자료를 줘야 하나요”가 아니라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다. 질문의 형태가 이미 답을 말해 준다.

그래서 필자는 공정위 현장조사를 ‘강제된 임의조사’ 또는 ‘명령받은 자발성’이라고 부르고 싶다. ‘따뜻한 아이스크림’이나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형용모순은 문학에서는 근사한 수사(修辭)다. 문제는 공정위의 형용모순이 말로 끝나지 않고, 현실에서 수사(搜査)처럼 작동한다는 데 있다. 공정위가 기업에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 뜨거운 아이스크림이다. 처벌의 위협 아래에서 녹지 않고 버텨야 하는, 자발적 동의라는 이름의. 영장은 없는데 거부는 못하고, 강제는 아니라는데 결과는 강제와 다름이 없다. 주례가 하객들에게 “이의 있으신 분은 말씀하십시오”라고 묻는 장면과 비슷하다. 묻기는 하는데, 정말로 손을 들라고 묻는 것은 아니다.

[제미나이]

[제미나이]

처벌의 위협과 통제의 진공

문제는 이 유머가 헌법 교과서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강제수사에는 법관의 영장이라는 사전 통제가 붙는다. 임의조사에는 영장이 없는 대신 ‘진정한 동의’라는 통제가 붙는다. 그런데 형사처벌을 전제로 동의를 받아내는 순간, 두 통제장치가 모두 빠진 진공지대가 생긴다. 영장도 없고 임의성도 없는 조사. 학계와 실무계에서 오래전부터 “형사처벌의 위협은 동의 여부에 관한 선택의 기회를 박탈한다”고 지적해 온 이유다.

진공지대는 조사의 범위에서도 나타난다. 영장에는 압수할 물건과 수색할 장소가 특정되어야 하지만, 조사공문의 문구는 그보다 훨씬 성기다. 디지털 포렌식이 일상화된 오늘날 현장에서 확보되는 정보의 폭은 어지간한 압수수색을 능가하기도 한다. 더 곤란한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임의조사에는 형사절차와 같은 진술거부권 고지가 없는데, 그렇게 확보된 진술과 자료는 공정위가 고발하는 순간 형사절차의 문턱을 넘는다. 행정조사의 얼굴로 들어와 수사의 몸집으로 자라는 셈이다.

공정위의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담합의 증거는 이제 금고가 아니라 메신저의 ‘대화방 나가기’ 버튼 뒤에 산다. 점잖게 협조를 구하는 사이 증거가 증발하는 시대에, 조사의 실효성이라는 공익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2021년 개정법으로 조사공문 교부 등 방어권을 보완한 노력도 평가할 만하다. 비판의 과녁은 실효성이 아니라 정직성이다. 실질이 강제라면, 솔직하게 강제라고 부르면서 강제에 걸맞은 통제를 받으면 된다.

강제라면 강제답게 통제하라

마침 지난해 연말에 공정위 스스로 강제조사권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역설적이지만 반가운 소식이다. 강제조사권이 ‘필요하다’는 말은, 뒤집으면 지금의 조사가 법적으로는 강제가 아니라는 자인이기 때문이다. 이왕 논의를 시작했다면 제대로 하자. 강제의 권한에는 법관의 영장 또는 그에 준하는 사전·사후 통제, 변호인 참여권의 실질화, 조사범위의 명확한 한정이 한 묶음으로 따라와야 한다. 영장을 거치면 조사가 늦어진다는 반론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절차의 번거로움은 기본권 보장의 비용이지 낭비가 아니다. 검찰과 경찰도 그 번거로움 속에서 일한다. 권한은 강제수사 수준으로 올리면서 통제는 임의조사 수준에 두는 것은 제도 개선이 아니라 진공지대의 공식화일 뿐이다.

기업조사 대응으로 밥을 버는 변호사의 말이니 의심부터 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기업 편, 공정위 편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절차 적법성에 관한 상식의 문제다. 동의 없는 임의는 임의가 아니고, 통제 없는 강제는 법치 안의 강제가 아니다. 어느 쪽이든 좋으니 이름과 실질을 일치시키자. 참고로 이 칼럼을 여기까지 읽으신 것은 어떤 처벌의 위협도 없이 이루어진 일이니, 진정한 ‘임의’가 무엇인지는 이 글을 읽으신 분들 모두 이미 몸소 체험하신 셈이다.

[이창훈의 경쟁법인사이트]에서는 세종의 경영위원이자 공정거래그룹 팀장을 맡고 있는 이창훈 변호사가 경쟁법을 둘러싼 여러 법적 이슈들을 다룹니다. 국내외 중요 공정거래 사건들을 주도하면서 ‘상어(shark)’ 같은 집요함으로 알려져 있는 그는 한국경쟁법학회와 한국경쟁포럼 이사, 서울대 경쟁법센터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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