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형준]비례정당 공천 폐해 보여준 ‘혁진기행’

3 days ago 9

황형준 정치부 차장

황형준 정치부 차장
이재명 정부 첫 국정감사에서 ‘의문의 1승’을 거둔 인물이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인 무소속 최혁진 의원은 국감 첫날 조희대 대법원장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빗댄 ‘조요토미 희대요시’ 합성사진을 들고 나왔다.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조 대법원장이 친일 보수 네트워크에 의해 추천된 인사라는 주장을 펴며 조 대법원장을 조롱한 것이다. 며칠 뒤엔 실존하지도 않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친언니가 김건희 여사의 측근에게 내연녀를 소개해줬다는 황당 주장을 폈다. 그 다음 날엔 옆자리인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 질의시간에 몸과 얼굴을 틀어 눈을 부릅뜨고 빤히 바라보며 질의를 방해했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무소속 초선 의원의 노이즈 마케팅이라고만 치부하기엔 도가 지나친 기행(奇行)이었다.

기가 막힌 건 기행을 일삼은 덕에 그가 의정활동 4개월 만에 후원금 1억5000만 원 모금을 완료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와 관련해 페이스북에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보내주신 한마디 한마디가 큰 울림으로 다가와 ‘더 진심으로 일해야겠다’는 다짐을 거듭하게 됐다”고 했다. 인지도를 높이고 친여 성향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으며 후원금까지 많이 모았으니 개인으로선 꿩 먹고 알 먹기인 셈이다.

최 의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사회적경제비서관을 지냈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인사들에게 물어보니 “당시 조용하고 튀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정치인으로 달라진 모습에 깜짝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국감 이후 민주당 복당을 기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고향인 강원 원주시에서 시장으로 출마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는 의정활동 시작부터 노이즈를 몰고 다녔다. 범여권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출신으로 올해 6월 비례대표 의원이었던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등이 대통령실 참모로 자리를 옮기면서 비례대표직을 승계했다. 그러나 기본소득당 몫으로 추천을 받았음에도 기본소득당 합류를 거부하며 정치적 도의를 지키지 않았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가 최 의원을 향해 “의석을 도둑질한 정치 사기꾼”이라고 비난할 정도였다.

최 의원은 지역구에서 선출된 것도 아니고, 비례대표 후보의 원 소속도 거부했다. 더불어민주연합에 표를 던진 유권자 표심과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게 되는 제도의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면서도 면책특권 뒤에서 근거 없는 주장만 펴고 있다.

이는 국회가 책임을 방기한 결과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처음 생겨난 비례위성정당은 정치권의 이합집산에 따라 급조됐다 사라지면서 제대로 된 검증 없이 함량 미달의 후보들을 졸속 공천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미 21대 국회에서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 후원금을 횡령한 윤미향 전 의원, 재산을 축소 신고한 김홍걸 전 의원 등 위성정당 출신 의원들의 자질 논란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선거법 개정 등 제도 개선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고 22대 총선에서도 ‘떴다방 정당’은 되풀이됐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은 사법개혁 등에 주력하기에 앞서 왜곡된 선거제와 면책특권 개선 등 자기 개혁부터 해야 할 것이다. 자기 진영과 지지층만 바라보는 ‘혁진기행’식 정치는 국회 전체의 격을 떨어뜨리고 우리 정치를 안갯속에 가둘 뿐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리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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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형준 정치부 차장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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