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거행된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검은색 정장·넥타이 차림의 세계 정상들 사이에서 홀로 푸른 정장·넥타이를 택해 눈길을 끌었고, “자리가 권력”이라는 주장대로 맨 앞줄을 차지했다. 교황의 모국인 아르헨티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지각하는 바람에 교황의 관이 봉인된 후에야 이탈리아에 도착해 조문을 하지 못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교황의 장례식에 푸른 정장과 넥타이를 착용해 이목을 끌었다. 바티칸 복장 규정에 따르면 장례식에서 남성은 어두운 정장에 긴 검은색 넥타이를 착용하고, 재킷 왼쪽 옷깃에 검은색 단추를 달아야 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등 검은색 정장으로 복장 규정을 지킨 세계 정상들 사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푸른 정장은 눈에 띄었다. 뉴욕타임스(NYT)는 “드레스 코드를 심각하게 위반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기준의 경계에 있었다. 온통 검은색과 붉은색뿐인 장례식장에서 간판처럼 눈에 띄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교황과는 2017년 5월 단 한 차례 만났다. 교황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줄곧 그의 강력한 반이민 정책에 반대하면서 “다리를 짓는 게 아니라 벽만 쌓을 생각만 하는 이는 그가 어디에 있든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비판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종교 지도자가 어떤 사람의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수치”라고 반박했다. 이번 장례식 미사를 집전한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은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한 자리에서 교황의 이 발언을 다시 한번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교황과 대립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장례식에서 맨 첫 줄을 차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 “부동산에서도, 정치나 삶에서도 자리가 전부”라는 지론을 펼치며 공식 행사서 미국 정상의 자리 배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장례식에서 뒷줄에 배정받자 “미국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장례식에서는 에스토니아, 핀란드 정상 사이 첫 줄을 차지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자리에 매우 신경 쓰는 트럼프 대통령이 첫 줄을 차지해 기뻐보였다”고 전했다.
한편 교황 모국인 아르헨티나의 밀레이 대통령은 이탈리아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성 베드로 대성당 조문을 하지 못해 비판받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헤럴드는 25일 “밀레이 대통령이 자신이 존경하는 스페인 경제학자의 박사 학위 수여식에 참석하는 바람에 이탈리아 출발이 2시간 연기돼 교황의 관이 닫힌 후에야 이탈리아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바티칸이 초청한 대로 도착했을 뿐”이라며 문제를 제기한 기자들을 향해 “심각한 지능지수(IQ) 저하를 가진 놈들”이라고 비난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취임 전 프란치스코 교황의 진보적 행보에 대해 “악마의 대리인” “좌파 공산주의자”라고 비판했다. 다만 취임 후에는 “그의 친절과 지혜를 알게됐다”고 했고, 교황 선종 후에는“역사상 가장 중요한 아르헨티나인”이라고 부르며 7일간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