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조세 리더로 떠오른 EU…한국의 대응은? [광장의 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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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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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유럽연합)는 27개 회원국이 모인 ‘주권의 집합체’다. 영국이 브렉시트(Brexit)를 통해 탈퇴했지만, 여전히 약 4억 5000만 인구를 아우르는 세계 최대 단일시장을 유지하고 있다. 단일시장의 원형인 유럽경제공동체(EEC)는 1957년 로마조약에서 출발해 70년 가까이 ‘더욱더 긴밀한 연합’을 목표로 역내 경제통합을 지속해왔다.

그러나 EU 단일시장에도 미완의 과제가 있다. 바로 직접세 분야의 조화와 통일이다. 조세는 각국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EU 회원국들은 과세 자율권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이 자율권은 단일시장의 핵심인 상품·서비스·인·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설립의 자유, 즉 ‘차별금지 원칙’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보장된다.

조세정책에서 EU의 역할 확대...아일랜드 사례 '주목'

EU 조약에 따르면 직접세 관련 EU 법제는 회원국 장관회의인 이사회가 '지침 형식'으로 만장일치 합의해야 하며 각국은 이를 자국 법에 반영해 시행한다. A 분야에 대해 세금 회피를 방지하는 법을 만들라"는 지침이 나오면 독일·프랑스 등 각국이 각각 자기 방식대로 이를 입법하게 되는 것이다.BEPS(세원잠식과 소득이전) 프로젝트가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모자회사 지침, 이자·사용료 지침 등 6개 지침 정도만 조세 지침으로 존재했으나 BEPS 이후 단일시장의 조세 조화 국제조세회피 방지, 조세행정 협조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지침들이 제정되며 큰 폭으로 늘어났다.

EU 내 국가는 그 수만큼이나 경제 구조와 조세정책 접근방식도 다양하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처럼 전통 산업국 중심의 대국도 있지만, 네덜란드·아일랜드·룩셈부르크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는 조세경쟁을 통해 기업과 자본을 유치해왔다.

ChatGPT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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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사례는 아일랜드다. 애플은 1980년대 이곳에 노트북 제조공장을 설립했고, 이후 12.5%라는 낮은 법인세율로 수많은 다국적 IT·제약기업이 본사를 아일랜드에 두었다. 이들 기업이 납부하는 세금은 아일랜드 전체 법인세 수입의 약 90%를 차지할 정도다.

그러나 2024년 9월, EU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는 아일랜드 정부가 애플에 유리한 조세예규(tax ruling)를 제공해 국가보조금을 지급했다는 EU 집행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한 1심 판결을 뒤집고, 아일랜드가 애플로부터 약 140억 유로(이자 포함 약 20조 원)를 환수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조세경쟁이 역내 공정 경쟁을 저해해 단일시장에 위협이 된다는 사법적 판단이다.

사실 EU는 1997년 OECD가 유해 조세경쟁 논의를 시작할 무렵부터 자체적으로 역내 유해 조세제도를 감시해왔다. 내부 정비가 끝나자 EU는 역외 국가의 유해 조세정책에도 감시의 눈을 돌렸고 그 여파로 2017년 12월 대한민국의 외국인투자 조세감면 제도가 ‘블랙리스트’로 지목돼, 2018년 12월 정기국회에서 해당 제도가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글로벌 조세 스탠다드 설립하는 EU

그만큼 EU의 국제조세 분야 영향력은 미국 못지않게 강력하다. 따져보면 국제조세 규범논의를 주도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8개 회원국 중 22개가 EU 국가들이다. 글로벌 최저한세(필라 2)는 EU가 선제적으로 입법하였고, 다국적 IT기업의 매출에 일정한 원천징수세를 매기는 디지털서비스세도 EU 국가들이 먼저 입안한 것이다. 최근 EU 집행위원회는 회원국별 법인세율을 그대로 두면서, 법인세 공통과세표준(Common Consolidated Corporate Tax Base, CCCTB)을 도입하고 매출 등을 반영한 일정한 공식에 따라 이를 각국에 배분하는 개혁안(지침안)을 제시했다. 이는 단일시장 내 조세장벽을 제거하고 기업친화적 환경을 조성하려는 취지다. 동시에 조세경쟁을 억제하려는 목적도 있다.
하지만 낮은 세율로 외국 기업 본사를 유치해온 아일랜드 등은 반대 입장이다. 직접세 분야는 만장일치가 필요하므로, 이러한 조세 개혁은 종종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 되며, 합의까지 장시간이 소요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EU 내에서는 만장일치를 가중다수결로 바꾸자는 논의도 있지만, 아직 실질적 진전은 없다. 바로 여기에 EU 단일시장의 한계가 있다.

 유럽국가 법인세율, 2024년 / 사진출처: Tax Foundation

유럽국가 법인세율, 2024년 / 사진출처: Tax Foundation

국내 조세 실무의 시사점?

EU 단일시장은 국내 국제조세 실무의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높은 구매력을 지닌 진출시장으로서의 중요성이고 국제조세 규범의 형성자로서 우리 기업과 정부에 미치는 영향력이다.

과거에는 EU 조세법이 우리 기업에 직접 영향을 주는 사례가 드물었지만, 최근에는 조세회피방지지침(ATAD), 국가별보고서 공개 등 역외기업도 이행 부담을 지는 제도가 속속 도입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외국인투자 조세감면 제도 폐지 사례에서도 EU의 실질적 영향력을 체감할 수 있었다. 또한, 앞서 말한대로 우리나라가 EU의 조세비협조국으로 지정되고 세법 개정으로 해제되는 과정에서 EU의 영향력을 몸소 체험한 바 있다.

이처럼 변화하는 EU의 국제조세 환경에 대해 우리 기업과 정부는 더 이상 수동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제도 입안 단계부터 관심을 갖고 그 파장을 면밀히 분석하며, 선제적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김정홍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 김정홍 변호사는 기획재정부(세제실), 대법원(조세조 재판연구관) 및 국제기구(OECD 대한민국정책센터) 등 다양한 공직에서 국제조세 등 세제분야에서 경력을 쌓아 온 변호사로서 2021년부터 광장에 합류하여 인바운드 및 아웃바운드 국제거래 전반에 관한 국내세법, 조세조약, 이전가격 등 분야의 자문 및 대응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현재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이며, 저서로 국제조세법(공저, 제3판, 박영사)과 국제조세분야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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