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이슈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월 17일 포스코의 탄소저감 강재 브랜드 ‘그리닛(Greenate)’에 대한 그린워싱 신고 건을 검토한 끝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는 지난해 6월 환경부의 동 브랜드에 대한 행정지도에 이은 조치로, 기업의 그린워싱에 강경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린워싱(greenwashing)은 친환경을 뜻하는 ‘green’과 위장을 뜻하는 ‘whitewashing’의 합성어로, 기업이 환경적 성과를 과장하거나 왜곡해 홍보하는 행위를 말한다.
기후 위기와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기업은 ESG 경영과 탄소중립 달성 등을 내세우며 경쟁적으로 친환경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국내외 기관투자자도 지속가능성을 투자 기준으로 삼으면서, 기업은 이미지 제고와 투자 유치를 위해 과열된 친환경 홍보에 몰두하고 있다. 이는 소비자의 인식이 크게 변화한 데 따른 것이다.
한국소비자원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7.8%가 친환경 제품을 구입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으며, 그중 94.8%는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친환경 소비가 보편화되면서 기업의 허위·과장광고를 감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점차 강화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의 그린워싱은 주로 제품 및 서비스 시장에서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허위·과장광고 문제를 주로 다루는데, ▲공정위의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표시광고법) ▲환경부의 환경 기술 및 환경산업지원법(이하 환경기술산업법)에 의해 이원적으로 규제된다. 그러나 최근 시민사회 등에서 기업의 녹색채권 발행이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등 자본시장에서 행해지는 허위 공시 등을 그린워싱으로 신고하는 사례도 늘어나며 자본시장 이슈로도 확대되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3년 9월 공정위가 ‘환경 관련 표시·광고에 관한 심사지침’을 개정했고, 환경부도 같은 해 10월 기업을 위한 ‘친환경 경영활동 표시·광고 가이드라인’을 발간하는 등 점차 그린워싱에 특화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지난해 ‘친환경 표시 지침’을 통과시키며 실증·인증 요건 등을 구체화했고, 위반 시 연간 매출액 최대 4%까지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그린워싱은 지난 몇 해 동안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이기도 하다. 2024년 국정감사에서는 기업의 환경성 표시·광고 기준 위반이 한 해 5000건에 가까워지고 있으나, 2019년부터 5년간의 누적 위반 사례 9932건 중 과태료나 시정조치 등 실질적 처분은 단 30건(0.4%)에 불과하고, 나머지 99.6%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행정지도 처분에 그쳤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침 재개정과 정책적 주목이 기업의 근본적 그린워싱을 방지하는지는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포스코의 제재 사례를 자세히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포스코의 탄소중립 마스터 브랜드 그리닛은 2023년 12월 환경부와 공정위에 각각 신고됐다. 일부 제품이 실질적 탄소저감 효과가 없거나 미미함에도 기후 대응에 기여하는 것처럼 홍보한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는 공정위의 심사지침이 개정되고 환경부의 가이드라인이 발간된 후 처음 제기된 신고였다. 그러나 환경부의 대응은 신고를 접수하고 약 7개월 후 ‘행정지도’ 수준에 머물렀고, 공정위는 기업이 이미 브랜드 사용을 중단한 지 수개월이 지난 후에야 시정명령을 내렸다.
환경부는 신고 대상이 된 브랜드가 구체적이지 않고 포괄적인 표현을 사용해 오인 소지가 있으며, 주장하는 내용을 실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하면서도, 법적 구속력 없는 권고 수준의 행정 처분을 내렸다.
공정위는 시정명령을 내리며 해당 광고가 실제보다 친환경 이미지를 주며 공정한 거래 질서를 저해했다고 판단하면서도, 기업이 일부 표현을 자진 시정하고 브랜드 사용을 중단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공정위의 행정처분은 포스코가 시정조치를 완료하고 한참이 지난 후 결정했는데, 환경부의 처분과 실질적으로 중복되는 조치를 내리며 실효성이 크지 않았다.
그린워싱에 대한 처벌이 기업에 감내 가능한 수준이라면, 이 문제는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는 소비자의 신뢰를 훼손하고, 실제 환경적 노력을 기울이는 기업에는 역차별이 된다. 기업들이 진정한 탄소중립을 위한 투자보다 과장된 마케팅 행위에 집중하게 돼 장기적으로 기후 위기 대응 자체를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실질적 규제와 예방 중심의 접근 필요
그린워싱은 사후적으로 바로잡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 따라서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규제뿐 아니라 위반 시 위반 정도에 상응하는 처벌과 신속한 판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해외에서는 주로 사업자가 실증 자료를 사전에 확보해야 광고의 정당성이 인정되는 사전적 규제가 작동하는 반면, 국내 실증 제도는 부당 광고 여부가 문제시된 후에야 입증 책임을 지는 사후적 규제로 운영된다는 점도 아쉽다.
규제 기관 간 교통정리도 필요한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대응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위한 교육과 지원 체계 마련도 필요하다. 자원이 부족한 기업이 규제에 대한 이해 없이 위험을 떠안지 않도록,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는 SK 계열사들이 ‘녹색 프리미엄’ 구매를 온실가스배출 감축 성과로 광고한 사안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녹색 프리미엄은 전기 사용자가 한전으로부터 전기를 구매하면서 일정 금액을 추가로 납부하고 재생에너지 사용을 인정받는 제도다.
한편 재생에너지 발전에 상응하는 온실가스 감축량은 국가의 감축분으로 귀속되므로 기업이 이를 자신의 온실가스 감축 성과로 홍보하는 것은 ‘감축 실적 중복 계산’에 해당해 그린워싱이라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기업이 여러 재생에너지 사용 인증 수단 중 유일하게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없는 녹색 프리미엄을 활용하고, 이를 재생에너지 사용 인증을 넘어 온실가스 감축 실적으로 포장하는 것은 소비자와 투자자를 오도하는 것이다.
공정위가 이번 사안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린다면 기업은 보다 정교한 탈탄소 전략을 수립하고 책임 있는 에너지 전환을 위한 노력을 강화할 것이다. 이는 한국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앞당기는 데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의 그린워싱을 억제하는 데 있어 핵심은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금지되는가’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애매한 경고가 아닌 명확한 기준과 강력한 집행은 기업이 오히려 더 나은 전략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이끄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린워싱을 반복하고 수습하는 소모적 순환을 끊고 이제는 진짜 ‘그린’을 실현하기 위한 경주를 시작할 때다.
이관행 기후솔루션 리걸팀 외국변호사(미국 캘리포니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