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미래 기술 주도권, 이차전지 국가적 투자 없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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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석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강기석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

첨단 산업은 우리 경제를 이끌어 온 엔진이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보여준 우리나라 성공은 과감한 기술 투자 및 선택과 집중 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한번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중국의 거센 추격, 글로벌 공급망 재편, 상용화 기술 포화, 그리고 국내 기업 여력 저하 등 복합적인 도전이 동시에 밀려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글로벌 기술우위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첨단 산업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 세계 배터리 시장 규모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장 규모만이 아니다. 배터리는 전기차를 비롯해 신재생에너지 시대 대용량 전력저장 시스템, 다가올 로봇과 드론 시대, 심지어 미래 국방 기술에도 핵심 부품으로 작용하는 기술이다. 산업 경쟁력을 넘어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전략기술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자원이 제한된 나라다. 그만큼 첨단 산업을 육성하는 데 있어 선택과 집중은 불가피하다. 그 관점에서 배터리 산업은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

세계 전기차 공급망을 보면 미국과 유럽은 글로벌 자동차 기업은 있어도 글로벌 배터리 기업은 없다. 중국은 CATL과 같은 배터리 기업은 있으나 세계적 자동차 브랜드는 부재하다. 일본은 산업 경쟁력을 점점 상실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글로벌 자동차, 배터리, 소재, 장비 기업을 모두 갖춘 드문 국가다. 배터리 산업 구조적 성장과 함께 우리나라는 세계 시장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이런 이유로 배터리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이어 국가 첨단전략 산업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전략 산업을 성공적으로 육성하려면 두 가지 방향 투자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첫째는 기존 산업을 극한의 고도화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원료, 소재, 장비, 제조까지 이어지는 배터리 공급망의 각 단계를 기술적으로 정밀화하고 혁신해야 한다.

둘째는 미래 기술에 대한 지속적이고 선제적인 투자로, 이는 더욱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나라가 배터리에서 일본을 추월할 수 있었던 것, 에너지밀도를 높이기 위해 리튬코발트산화물(LCO) 양극재에서 니켈(Ni), 코발트(Co), 망간(Mn)을 조합한 삼원계를 개발한 것, 삼원계에서 Ni 함량을 높이는 하이니켈로의 빠른 기술 전환 등은 정부와 민간의 선제적인 연구개발(R&D)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미래 원천기술 투자가 절실한 시점이다. 하이니켈 기술이 이미 상용화 끝단에 다다르고, 니켈 함량이 90%를 넘어서는 현시점에서 더는 물러설 공간은 많지 않다. 새로운 돌파구는 현 리튬이온 전지의 한계를 벗어난 이차전지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새로운 소재를 활용한 차세대 이차전지에 있다.

하지만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해외 생산기지 구축과 일시적인 전기차 시장 침체로 인해 미래 기술에 투자할 여유가 부족한 상황이다. 더군다나 중국은 과잉 생산을 바탕으로 가격 경쟁을 유도하며 '치킨게임' 양상을 만들고 있다. 이 경쟁이 종결됐을 때 결국 한두 개 승자만이 생존할 것이며, 이 승자는 시장을 독점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글로벌 경쟁에서 주도권 확보를 위해서는 차세대 이차전지 분야에 대한 정부의 과감한 원천기술 R&D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가 민간 중심의 산학연 협력 R&D를 지원해 미래 이차전지 기술 혁신을 가속화하고, 일회성이 아닌 지속 가능한 원천기술 연구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이는 단지 산업 육성의 차원을 넘어, 우리나라의 미래 생존 전략이자 안보 전략이기도 하다.

강기석 서울대 공과대 교수 matlgen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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