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가족이라는 마당에서 '인간'을 건져올린 작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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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가족이라는 마당에서 '인간'을 건져올린 작가의 삶

입력 : 2026.06.12 17:03

박완서 문학에서 '가족'이란 분모를 감지해내는 책

사진설명

우리의 삶이란 유한한 시간 위에 세워진 개별적인 건축물 같다. 이 건축물은 시간이 지나면 '옛것'이 되고 만다. 소설가의 문학도 그럴 것이다. 한 작가의 이야기는 한 시대에서 건진 삶의 한 형태이며 그 작업이 영원성을 부여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이름들은 단지 특정한 시간에만 머물지 않고 다음 시대에 통용된다. '박완서'란 이름도 그렇다. 그는 이미 역사가 된 인물이지만 그의 작품은 세기를 건너도 여전히 설득력이 강하다.

신간 '박완서 가족에 대한 글쓰기'는 그런 선생의 작가의 문학을 비추면서 작품에 내재된 '가족'의 의미를 추출하는 책이다.

서문에 적힌 표현대로 박완서 선생에게 가족은 "노는 마당"이었다. 인물과 시대에 따라 사람에겐, 또 예술가에겐 자기만의 노는 마당이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의 저자는 박완서 선생의 노는 마당을 가족으로 정의한다. 이때 작품 속 가족은 단지 등장인물 개인의 배경이 아니다. 가족이 뒤에 서지 않고 앞에 서기 때문이다.

1976년작 '조그만 체험기'가 그렇다. 이 소설은 구치소에 끌려간 남자의 아내를 다룬다. 남편은 잘못된 제품을 판매한 뒤 사기 혐의로 수감됐는데, 실은 그 역시 억울한 피해자였다. 중산층 주부인 화자는 구치소를 드나들며 수감된 남편에게서 그곳의 이야기를 청취한다.

구치소 내부는 공정해야 할 법을 알지 못해 오히려 법과 가장 동떨어진 인간들이 억울하게 갇힌 곳이었다. 구치소는 무엇보다도 '평등한' 공간이었는데, 여기서 평등이라 함은 뒷돈을 주든 주지 않든 똑같이 불친절한, 환언하면 '공평한 불친절의 평등'이었다. 이 소설은 박완서 선생의 개인적인 경험이 투영돼 있다. 한 개인의 경험은 이처럼 문학의 언어로 사회화되고, 자유란 '거창한 이념의 실현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그저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란 깨달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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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작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고통을 전화 통화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유명하다. 화자의 아들은 시위 중에 죽었고 열사로 추앙된다. 하지만 '형님'과 나누는 이 어머니의 수화기 음성에 따르면 그의 아들은 집단을 대표하는 한 명으로 죽은 게 아니고, 오직 한 여성의 신체와도 같은 피붙이의 부재를 환기하는 존재, 아니 부재 그 자체다. 저자는 박완서 선생의 이 소설을 두고 개별성을 집단에 쉽게 함몰시키지 말라는 메시지와 연관된다고 말한다. 참고로 박완서 선생은 실제로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

책에 따르면 박완서 선생이 가족을 다룬 소설 속엔 어떤 그리움이 감지된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가족의 형태 너머에 있는 인간다운 무엇을 향한" 그리움으로 이해한다.

가족은 가장 낡은 형태이지만, 가장 오래 보존될 미래의 형태다. 박완서 선생은 가족이라는 '마당'을 우주 삼아 시간을 건너고 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여전히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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