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기계는 노동을 대체하지만, 산업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남긴 말이다. 이 문장 앞에서 지금 한국 제조업은 얼마나 솔직할 수 있을까. 스탠퍼드대가 올해 발표한 'AI 인덱스 2026'은 한국을 이렇게 기록했다. 인구 10만명당 인공지능(AI) 특허 수 14.31건, 세계 1위. 2년 연속이다.
그런데 그 특허가 태어나는 공장 안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현실이 기다린다. 제조 현장에 AI를 실제로 도입한 기업은 전체의 0.1%다. 1000곳 중 한 곳이다. 특허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내는 나라인데, 그 기술이 실제 생산 라인에서 돌아가는 곳은 사실상 없다. 이 모순을 어떻게 봐야 할까.
문제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기술이 공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벽이 세 개 있다.
첫 번째는 인프라, 즉 '기초 공사' 문제다. AI를 현장에서 쓰려면, 공장의 데이터가 인터넷을 통해 외부와 연결된 환경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 쉽게 말해, 회사 정보를 공유 창고에 올려둬야 AI가 그것을 꺼내 쓸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제조기업 상당수는 아직도 정보를 자기 건물 안 서버실에만 가둬두고 있다. AI라는 새 가전제품을 들이기 전에 전기 배선 공사부터 끝나야 하는데, 그 배선이 깔려 있지 않은 것이다.
두 번째는 데이터 사일로의 장벽이다. 데이터를 수집하는 중소 제조기업은 60%가 넘는다. 그런데 수집한 데이터를 실제로 분석하는 곳은 절반 수준으로 줄고, AI에 연결하는 곳은 0.1%로 쪼그라든다. 공정팀이 쌓은 데이터, 품질팀이 쌓은 데이터, 협력사가 가진 데이터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저장돼 서로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AI는 이 데이터를 통째로 봐야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제각각 섬처럼 갇혀 있으니 연결이 되질 않는다. 아무리 좋은 엔진을 달아도 연료 파이프가 막혀 있으면 차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세 번째는 '읽을 사람', AI인재의 문제다. 'AI 인덱스 2026'은 한국의 AI 전문 인재 유입 순위를 OECD 38개국 중 35위로 기록했다. 사실상 인재가 한국을 떠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제조 현장에서 AI를 전담하는 부서나 직원이 있는 중소 제조기업은 100곳 중 한 곳도 되지 않는다. AI가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쏟아내도, 그것을 읽고 판단하는 사람이 없으면 숫자는 그냥 숫자로 남는다. 특허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내는 나라가, 그 특허를 현장에서 구현할 사람이 가장 부족한 나라이기도 하다. 이것이 오늘 한국 제조업의 민낯이다.
이 세 개의 벽이 어떻게 다르게 작동할 수 있는지는, 이미 답을 만든 기업들을 보면 선명해진다. 독일 지멘스에서는 설계자가 오전에 제품 도면을 수정하면 오후 생산 라인이 자동으로 바뀐다. 도면과 공장이 하나의 데이터로 묶여 있어서다. 미국 GE는 발전소와 항공기 엔진 수천 대에 센서를 달아, 기계가 고장 나기 전에 이상 신호를 먼저 잡아낸다. 갑작스러운 멈춤으로 생기는 손실을 크게 줄였다. 두 기업이 먼저 한 일은 AI 도입이 아니었다. 공장 안의 데이터가 막힘없이 하나로 흐를 수 있는 통로를 먼저 만들었다. 기술은 그 이후에 들어왔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순서가 자주 뒤집힌다. 통로도 없고 읽을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AI부터 먼저 들어온다. 그리고 공장 구석의 그 모니터처럼, 조용히 꺼진다.
올해 정부는 AI 전환 사업에 2조4000억원을 편성했다. 의지는 충분하다. 하지만 그 돈이 현장에 닿기 전에 먼저 부딪히는 것이 바로 이 세 개의 벽이다. AI를 도입하지 않은 중소기업 절반 이상이 꼽은 이유는 “AI가 우리 사업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기술 이전에 언어의 문제가 있다. 공장 안의 사람들에게 'AI 전환'이라는 말은 아직 번역되지 않은 구호일 뿐이다.
결국 혁신의 기술은 공장에 AI 장비를 들여놓는 기술이 아니다. 공장 안의 데이터가 막힘없이 흐르도록 길을 내고, 그 길 위에서 사람이 AI와 함께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기술이다.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함께 생각하는 조직을 설계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다.
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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