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어컨·컴퓨터·AI…인류를 진화시킨 가장 위대한 물건은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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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어컨·컴퓨터·AI…인류를 진화시킨 가장 위대한 물건은 [Book]

입력 : 2026.06.28 06:04

인류를 똑똑하게 만든 건 석기
억센 날고기 섭취 쉽게 만들어
소화에 쓰던 에너지 뇌로 이동

산업혁명 이후 물건에 계급 투사
환경 오염·불평등·전쟁도 촉발
스스로 만든 물건에 종속되기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도구는 인간에게 있어 태초부터 잉태된 비극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스스로 양분을 생산하지 못하기에 농기구를 만들어 수확량을 극대화하고 축적했다. 고립돼 살아갈 수 없기에 도로를 깔고 선박과 비행체를 고안했다. 도구가 촉발한 혁명으로 소규모 마을은 거대한 도시가 됐고, 인간의 발은 전 세계 어디든 닿을 수 있게 됐다. 인류 스스로 육신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도구의 발명과 고도화를 수백만 년간 이어온 결과다. 당연한 명제 같지만, 인간과 도구란 ‘주종관계’를 전복시키면 흥미로운 질문거리가 도출된다. 오히려 도구가 인간을 규정하고 진화의 궤적을 이끌어온 건 아닐까.

미국 덴버자연과학박물관 인류학 수석 큐레이터이자 고고학자 칩 콜웰이 펴낸 ‘거의 모든 물건의 역사’는 태초의 석기부터, 끝없이 물건을 소비하는 현대 문명까지 아우르며 도구의 관점에서 인류의 신체적·정신적 진화 과정을 추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약 330만년 전 초기 인류의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제작한 석기의 발견은 인류 문명의 출발점이었다. 단지 도구를 제작하고 사용하는 인간의 원형을 발견해서이기 때문은 아니다. 이 발견이 중요했던 이유는 현재 지구를 지배하는 인류종인 호모 사피엔스의 모습을 설명하는 단초를 제공해서다. 석기의 일종인 돌칼과 돌망치는 억센 날고기와 뿌리채소를 먹기 좋도록 자르는 데 도움이 됐다. 에너지 흡수율은 높아졌고, 더 이상 음식을 섭취하는 데 강한 위장과 치아는 필요가 없어졌다. 여분의 에너지는 지성을 담당하는 기관이자 에너지를 가장 많이 요구하는 ‘뇌’로 옮겨갔다. 커진 뇌는 더 나은 도구를 만들어내며 인류의 진화를 추동했다.

인류가 물건에 생존만 의탁한 건 아니었다. 의미와 아름다움도 발견했다. 신석기 시대 인류는 수렵·채집에서 벗어나 주거를 마련하고 예측 가능한 농업에서 식량을 구했다. 그러나 일조량, 재난, 전쟁 등 생존을 위협하는 불확실성은 여전히 인류를 괴롭혔다. 협동과 분업으로 위기를 돌파하려 했던 공동체를 묶어주는 건 종교적 ‘의례’였다. 신상, 제단, 공물, 신전의 등장은 현세와 내세에 대한 믿음을 신앙으로 격상시켰다. 신상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종교에 빠져든 신자들도 흔했다.

이후 산업혁명을 거치며 인류는 도구에 이념, 정체성, 계급, 자아를 투사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자유롭게 물건을 소비하는 행위는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민주적 평등의 상징이됐다. 동시에 더 비싸고 값진 물건은 계급을 과시하는 상징자본으로도 기능했다. 더 이상 사용가치라는 기표로만 활용되지 않았다. 한 인간을 상징하는 ‘기의’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자신들이 가진 물건 속에 익사하고 있다.”

저자는 인류학과 고고학, 생물학을 동원해 도구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현재 대량 소비사회 너머의 미래까지 묻는다. 풍요한 사회에서 함부로 버려지는 물건으로 초래되는 환경오염, 희소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 물질주의 팽배로 갈수록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을 조명하며 지금이 물건과의 관계를 재설정해야하는 시기라고 짚는다. 저자는 인간을 위한 도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 자체를 차지하기 위한 존재로 변모해가는 인류에게 제동을 거는 방책으로 ‘러다이트 운동’을 제안한다. 첨단 문명을 무작정 반대하지 않되 주종이 뒤바뀐 인간과 도구의 관계를 바로잡는 운동이다.

“기술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을 소외시키는 기술, 사회적·환경적 가치와 분리된 기술에 저항하는 러다이트를 뜻한다.(중략) 나는 300만년간 우리와 물건이 맺어온 관계를 살펴보면서 경이와 공포를 모두 느낄 수 있는 진정한 러다이트를 지지한다.”

사진설명

칩 콜웰 지음, 김병화 옮김, 부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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