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생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자신이 언제 떠날지를 알지 못하는 상태로 삶을 살아간다. 누구도 삶의 최후를 인지할 수 없다. 죽음의 무지는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누군가는 길게 살고 누군가는 짧게 산다는 점에서 삶이란 태생적으로 불공평성이란 조건 위에 세워져 있다.
하지만 다소간의 억울함에 대항하는 유일한 술책은 삶을 '꽉 채워 살아가는' 것이다. 남들은 자기 인생의 성공과 패배를 되돌아보는 삶의 종반전에, 도리어 변화를 욕망하고 자기 갱신을 이루며 한 단계 더 도약함으로써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된 사람들이 있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수전 구바의 신간 '피날레'가 출간됐다. 이 책은 노년에 이르러 오히려 찬란한 성취를 이뤘던 여성 예술가들의 삶을 되돌아봄으로써 '언제까지 살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살다 갈 것인가'란 질문을 우리에게 안긴다.
조지아 오키프는 꽃으로 유명한 화가다. 그가 그린 확대한 꽃의 형상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를 이루었고, 이로써 그는 이미 지구적인 경지에 오른 예술가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가 말년에도 꽃만 그린 건 아니었다. 그가 아흔 살에 그린 '구름 위의 하늘: 노란 지평선과 구름'(1976~1977)은 걸작으로 기억된다. 하늘의 구름 위에서 원경을 바라본 듯한 이 그림은 지평선을 향해 멀어질수록 하얘진다.
꽃을 그리던 회화 초기의 빨강 내지 녹색과 대조를 이루는 이 그림은, 놀랍게도 그가 황반변성 등으로 시력을 잃던 시기에 그린 작품이다. 이 그림을 두고 저자는 "근원적인 알맹이만 남은 것이어서 지각의 문을 정화해주는 듯하다"고 평가한다. 그는 자기를 확장해 본질에 가닿은 예술가로 남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예술가 루이즈 부르주아의 대표작은 '마망(Maman·어머니)'이라는 이름이 붙은 거미로 기억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거미'가 등장한 시기는 그가 84세였던 1995년이었다. '어머니에게 바치는 송가'라는 삽화를 곁들인 책에서, 부르주아는 거미를 어머니를 상징하는 존재로 등장시켰다. 영리하고 부지런하며 끈기 있게 거미줄을 수리하는, 그러면서도 상대를 물어 독을 퍼뜨릴 수 있는 존재인 거미에 천착한 시기는 그의 말년이었다. 당시 그는 관절염, 불면증, 청력 상실에 시달릴 만큼 몸이 쇠약해진 상태였다. 죽음이라는 커튼 앞에 서야 할 나이에 부르주아는 오히려 자신의 대표작을 남겼다. 저자는 그가 생애 마지막 10년간 만들어낸 작품 수를 되짚으면서 "현기증이 날 정도"라고 평하기도 한다.
책은 여성 예술가만을 조명한다.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남자의 몸보다 여자의 몸이 더 일찍 늙었다고 평가하는' 세상 때문이었다고 쓴다. 노년이라는 낙인은 남성보다 여성들을 더 괴롭혀 왔고, 대개 노년의 예술가를 상상하면 우리는 여성보다 남성을 떠올리기도 한다. 책은 '나이 든 여성'의 실존적이고도 미학적인 생존 기술로서의 예술 욕망을 뜨겁게 쳐다본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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