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높임말 교실’ 운영하는 교사 김희영씨 ‘높임말…’ 펴내
경기 하남시의 한 초등학교 5학년 교실을 촬영한 영상. 학생들 4명이 둥글게 모여 앉아 공기놀이를 하는데 말투가 남다르다. 친구들끼리 높임말을 쓰고 심지어 서로 ‘OO 씨’라 부른다.
이 아이들은 20년 차 초등교사 김희영 씨(46)의 반 학생들이다. 김 교사는 10년째 ‘높임말 교실’을 운영하는 높임말 프로젝트를 이어왔다. 그는 그 과정을 정리해 최근 책 ‘높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포레스트북스)도 펴냈다.
21일 전화 인터뷰에 응한 김 교사에 따르면 해마다 새 학기 첫날 학생들에게 “우리 반은 높임말로 대화합니다”라고 안내하면 아이들 표정이 혼란스럽다고 한다. 눈이 왕방울만 해져선 서로 눈치만 본다. 처음엔 쉬는 시간에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이 상황’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만, 차마 높임말이 나오지 않는 모양.하지만 보통 한 달 정도 지나면 ‘높임말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다. 김 교사는 “반말하는 친구를 지적하기보단 높임말 잘 쓰는 학생들을 칭찬한다”며 “칭찬 받으면 자발적으로 ‘높임말 전도사’가 된다. 반말 쓰는 친구가 있으면 ‘OO 씨, 높임말 쓰셔야죠’라고 서로 고쳐준다”고 했다.
학생들이 ‘높임말’이란 큰 산을 넘고 나면, ‘예쁜 말’ 언덕은 아주 쉽게 올라간다고 한다. 비속어를 밥 먹듯 쓰던 아이조차 교실에선 나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쓰면 반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단계까지 오면 아이들은 나쁜 말을 굉장히 불편해하고 듣기 힘들어했다.
“사실 높임말로 대화하는 기간은 저와 있는 딱 1년이죠. 장소도 교실로 국한돼 있고요. 하지만 그 1년이 분명 아이들의 평생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고운 언어를 사용해 봤으니, 그렇지 않은 환경에 있어도 거친 언어가 뭔지를 빨리 인지할 수 있죠. 존중받은 느낌을 배웠으니 타인을 존중할 수도 있고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그런 시간을 갖는 것과 아닌 것은 차이가 있죠.” 김 교사 역시 높임말 프로젝트의 효과를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다 프로젝트 2년 차 때 만난 한 학생에게서 확신을 얻었다. 5학년 담임 때 만난 그 학생이 6학년이 된 뒤 교실로 찾아왔다. 높임말에 적응하는 걸 유독 힘들어하던 아이였는데, 그가 들려준 얘긴 무척 놀라웠다.“선생님, 사실 작년에는 선생님이 이해가 안 됐어요. 왜 그렇게 하라고 하는지. 한데 이젠 알겠어요. 작년 우리 반 아이들은 다른 반 아이들하고 달라요. 복도에서 만나도 우리끼리는 높임말로 인사해요.”
김 교사는 그때를 떠올리며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그 한마디 덕분에 굳건히 높임말 교실을 끌어갈 수 있었다”며 “어른이 일관성 있게 지도하면 아이들은 ‘무한 성장 발전소’가 된다”고 강조했다.
“높임말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준비물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예산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냥 정말 한번 ‘해보자’ 하고 꾸준히만 하면 되는 거죠.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일 수도 있어요(웃음).”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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