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봄이 왔고 내 인생도 피어날 거예요.”
세계 문화의 수도인 미국 뉴욕 맨해튼. 이곳의 상징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서쪽으로 6~7분 남짓 걸어가면 통유리로 된 7층짜리 신축 건물이 나온다. 2024년 새로 문을 연 뉴욕한국문화원이다. 한국 시골집 토담을 연상시키는 야트막한 담장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한글벽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전 세계에서 수천 명이 보내온 ‘나누고픈 한글 문구’를 알록달록한 타일 2만개에 새겨 높이 22m 벽으로 만든 것이다.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도 온라인에서 영어로 적으면 한글로 바꿔주는 LG CNS의 정보기술(IT) 시스템 덕분에 50여 개국에서 7000명이 넘는 이들이 글귀를 보내왔다. LED 스크린을 통해 누구나 자신만의 한글 문구를 실시간으로 띄울 수도 있다.
◇K-컬처 체험 공간이 되다
‘제2의 백남준’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강익중이 재능 기부로 만든 이 벽은 김천수 전 한국문화원장(사진)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김 전 원장은 “한글을 매개로 한국 문화를 가장 ‘뉴욕스럽게’, 즉 새롭고 늘 변화하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알리고자 했다”며 “한국문화원이 뉴욕현대미술관(MoMA)처럼 뉴요커가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자리 잡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3년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그는 삼성그룹 출신으로 제일기획 부사장과 CJ 라이브시티 대표를 지냈다. 여러 곳에서 오라는 러브콜을 뿌리치고 뉴욕으로 건너와 2023년 초 한국문화원장에 취임했다. 한국문화원은 그 이듬해 45년 셋방살이를 끝내고 지금의 신청사를 개관했다. 사업을 추진한 지 15년 만이었다. ‘K-컬처’의 황금기에 한국문화원의 역할도 새롭게 정립해야 할 시기였다.
김 전 원장은 “자본과 문화예술의 중심인 맨해튼에서 한국문화원이 나아갈 방향과 전략을 재설정할 매력적인 기회였다”고 회고했다. 김 전 원장에게 3년은 한국문화원을 하나의 ‘브랜드’로 설계하는 시간이었다. 정해진 행정 절차에 따라 기관을 운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략을 세우고 자원을 끌어와 실행하는 민간의 경영 논리를 한국문화원에 이식한 것이다. 그는 브랜드 전략의 문법대로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각인시킬지부터 다시 정의했다. 인본과 자유의 정신을 담은 한글을 상징으로 정하고, 한국문화원을 단순한 행사장이 아니라 ‘뉴욕 속 한국’을 경험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만들어보자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예산이었다. 한국문화원의 연 사업 예산은 고작 100만달러. 뉴욕에서 일본 문화를 알리는 재팬소사이어티의 870만달러(2024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다.
김 전 원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직접 발로 뛰어 후원과 참여를 이끌어냈다. 동포 기업인 미국 키스(KISS)그룹을 설득해 한글벽 재원을 마련하고 LG 측의 IT 시스템 지원을 약속받았다. 삼성전자와 제일기획에 제안해 한국문화원 예산 한 푼 들이지 않고 한글트럭이 미국 전역 명문대를 순회하는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전라남도의 후원을 받아 뉴욕에서 유일한 한국 전통정원을 내부에 조성했다. 지난 2년간 이 모든 사업에 들어간 비용은 약 800만달러로, 공식 예산의 4배에 달했다.
김 전 원장은 “이제까지 쌓은 네트워크를 총동원하고 직접 각 기관에 프레젠테이션하러 다녔다”며 “마침 K-컬처가 매력적인 마케팅 수단이 된 시대적 흐름을 잘 탄 덕분도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무원은 실패했을 때 위험이 크기에 어려움이 있지만, 평생 민간에서 일한 경영인으로서 틀을 벗어나(out of the box) 해결책을 찾는 발상을 공공에 접목하고 싶었다”고 했다.
◇“선진국형 비영리 조직으로 전환”
문제는 앞으로의 방향성이다. 김 전 원장의 퇴임 이후 한국문화원은 두 달 가까이 리더십 공백 상태다. 한국 문화에 대한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지난 3년의 성공을 어떻게 지속 가능한 구조로 전환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시급하다.
김 전 원장은 한국문화원이 정부 예산과 세금에 기대는 구조를 넘어 장기적으로 선진국형 비영리 조직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업과 동포 사회의 후원, 시민 기부와 회비·티켓 매출 등으로 운영되는 모델이다. 이미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요국 문화원은 이런 구조로 돌아가고 있다. 김 전 원장은 “문화예술의 중심인 이곳에서 주류가 되려면 지금처럼 ‘이방인 기관’으로 계속 남아 있을 수 없다”며 “뉴욕은 기부 문화가 활성화돼 있고 K-컬처 소비 수요도 높아 정책적 관심만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빈난새 특파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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