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산업의 성장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존, 구글,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가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 용량을 현재의 세 배로 확대하자는 선언을 지지하고 나선 것은 첨단산업과 원자력의 관계가 이제 불가분의 것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원자력은 날씨와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대용량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전력 품질과 공급의 연속성이 핵심인 AI 시대에 꼭 필요한 에너지다. 또 산업 특성상 에너지 수요가 세계 전 지역에서 골고루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형성된다. 따라서 첨단산업은 초고밀도 에너지 공급 능력을 가진 원자력과 딱 맞아떨어진다.
이제 우리는 대형 원전을 최대한 확대해 전력 기반을 먼저 확충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2040년 전후 본격 보급될 것으로 기대되는 소형모듈원전(SMR) 개발 및 상용화도 서둘러야 한다. SMR은 그 자체로는 소출력이지만, 여러 모듈을 결합해 대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원자력의 본질적인 강점인 대용량 공급 능력을 유지하면서도 입지와 안전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 된다.
특히 해상원전 역할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바다에는 육지보다 훨씬 큰 생명체들이 산다. 예컨대 육지에서 가장 큰 동물인 코끼리보다 바다의 흰수염고래가 수십 배 크다.
이는 해양 환경이 육지보다 더 빠르고 더 크게 성장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해상원전, 그중에서도 부유식 원전은 바로 이 같은 바다의 특성과 닮았다. 부유식 원전은 부지 확보가 자유로워 입지 갈등이 적고 석탄화력발전소가 밀집한 해안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대체가 가능하다. 조선소에서 선박처럼 모듈을 빠르게 생산할 수 있고 완성된 원전을 해상으로 이송해 원하는 위치에 설치할 수 있어 시공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에 유리하다. 바다에서는 대형화가 쉽다. 또한 거대 구조를 땅에 세우기보다 바다에 띄우기가 쉽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기술과 원자력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반도체와 정보기술(IT) 기업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들 산업과 원자력을 결합하면 해상 부유식 원전과 첨단산업이라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할 수 있다. 기후변화 대처, 에너지 안보와 산업 성장이라는 여러 마리 토끼를 잡는 길이 될 것이다. 실제로 국내 조선소는 이미 부유식 원전을 개발 중이며 개념 설계를 완료하고 국제 인증 절차에 돌입한 사례도 있다. 이를 통해 국내 해안과 해안 인근에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AI 서버를 유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고래를 키우려면 고래가 살 바다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거대 기업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이들 기업이 올 것이다. 공급 가능한 전력이 풍부하고 저렴하고 안정적이라면 에너지 집약적 첨단산업이 자연스럽게 그 주변으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원자력은 그 중심에 있다. 기후변화와 국제 에너지 블록화가 심화되는 오늘날,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전력 공급 능력을 갖춘 국가는 곧 미래 산업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이제 원자력 전력을 아주 빠르게 대규모로 공급할 수 있는 나라가 첨단산업의 중심이 될 것이다.
이런 대전환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 수요가 생기면 공급하겠다는 수동적 태도를 벗어나 육상 대형 원전, 육상 SMR 및 해상 부유식 SMR 대규모 조기 공급을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고 규제 개선, 인·허가 혁신, 인재 양성, 공급망 구축 등을 뒷받침해야 한다. 아마존과 구글 같은 고래가 국내에 생겨나고 해외에서 들어올 수 있도록 전력 인프라를 국가 차원에서 준비해야 한다. 원자력은 그저 하나의 에너지원이 아니다. 이제는 첨단산업의 기반이며 대한민국 미래의 성장 엔진이다. 땅과 바다, 모든 영역에서 원자력 총력전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는 차도 아파트도 없던 시절 대규모 철강산업을 키웠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 제조업이 오늘날의 경쟁력을 갖췄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제 우리는 제2차 산업화를 추진해야 한다. 석탄과 철이 이끈 1차 산업화와 같이 원자력과 첨단산업이 이끄는 2차 산업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