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노란봉투법 석달… “노조 요구 하나만 인정돼도 진짜 사장”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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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인정’ 지노위 판정문 분석
표준하도급계약 따랐다고 “사용자”
“화장실 관리능력 있어도 교섭 대상”
하청 1137곳, 원청 431곳에 교섭요구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이 이달 10일로 시행 3개월을 맞은 가운데 법 적용 여부를 판단하는 지방노동위원회가 “하청 노조가 요구한 의제 중 하나라도 인정되면 기업은 교섭에 나서라”는 판정을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안전과 근로 조건, 임금 등 여러 교섭 의제 중 한 가지만 사용자성이 인정돼도 원청 기업이 하청 노조와 교섭해야 할 ‘진짜 사장’이라고 본 것이다. 이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3개월 동안 지방노동위가 노사 양측에 송달한 16건의 판정문을 분석한 결과다.

기업이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안전보건 의무를 이행하거나 건설 현장의 표준하도급계약을 지키는 것도 사용자성 인정의 빌미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노동위 판정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면서 산업 현장의 혼란은 더 커지고 있다.

● “노조 요구 하나만 인정돼도 교섭 대상”

9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3월 10일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이달 5일까지 하청 노조 1137곳(조합원 16만1830명)이 원청 사업장 431곳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다.

이 가운데 원청 기업이 하청 노조와 교섭을 해야 하는지를 두고 지방노동위가 판단한 사안은 80건이며,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해 교섭하라고 결론 내린 사건은 69건에 달한다. 이 중 9일 현재까지 지방노동위는 16건에 대해 노사 양측에 판정문을 전달했다.

국민의힘 조지연 의원실이 중노위에서 받은 16건의 판정문에 따르면 지방노동위는 대체로 ‘노조가 요구한 교섭 의제 중 어느 하나라도 인정되면 사용자’라고 명시했다.

포스코 사건을 담당한 경북지노위는 “교섭 요구 안건 일부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되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하나의 요소라도 인정되는 경우에는 사용자성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이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민간 기업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첫 판단이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인천지노위도 “산업안전 의제에 대한 사용자성이 인정됐기 때문에 나머지 교섭 의제에 대한 사용자성 인정 여부는 살펴볼 필요가 없다”고 적시했다. 공사 측이 “임금, 인사, 근로시간 등 개별 근로 조건에 대해서는 사용자가 아니다”라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동안 경영계에서 산업안전 등 가장 약한 고리에서 사용자성이 인정되면 교섭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고 우려해 왔는데 판정문에 그대로 명시된 셈이다.

● 표준하도급계약서가 사용자 인정 빌미

지방노동위는 원청이 산업안전보건법이나 표준하도급계약서 등을 따르는 것도 사용자성 인정의 근거로 봤다. 경북지노위는 포스코이앤씨 사건에서 “계약서상 원청이 작업을 지시하고 사고 예방 조치를 하므로 사용자로 인정한다”며 “특히 배수·하수 처리가 수반돼야 하는 화장실 등을 설치 및 관리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포스코 사건에서는 현장 기술자들이 1년에 한두 번 현장에서 일하더라도 원청 기업의 사용자성이 인정됐다. 포스코 측은 심판정에서 “노조원들은 시공사와 일용 계약을 맺고 공사가 끝나면 다른 조건 좋은 현장으로 이동한다”며 “1년에 한두 번 현장에 들어오거나 아예 안 들어오는데 단체협약을 전제로 교섭할 수 있느냐”고 했다. 하지만 지방노동위는 “조합원 개인이 지속적으로 근무하지 않는다고 해도 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근무한다”며 교섭 의무를 인정했다.

산업안전 의제만으로 사용자성을 판단하면 안 되고 개별 교섭 의제별로 따져야 한다고 본 중흥건설·토건에 대한 전남지노위 판정은 중앙노동위에서 뒤집혔다. 전남지노위는 “원청이 산재 예방 책임과 안전조치 의무를 부담한다고 해서 사용자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중앙노동위는 중흥건설·토건이 교섭에 응해야 한다며 타워크레인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 “사용자 개념 너무 넓어… 노란봉투법 허점”

전문가들은 산업안전 의제만으로도 사용자성이 인정되고 교섭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노란봉투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일단 교섭을 시작하면 임금이나 성과급 등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뚜렷한 기준 없이 내려지는 지방노동위 판정에 노사 양측 모두 거세게 반발하면서 산업 현장 혼란도 심해졌다. 중앙노동위에 접수된 재심 사건은 19건이며 불복 주체는 노사 양측을 가리지 않는다.

노동계에서는 이달 15일로 예정된 현대차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에 대한 울산지노위 판단이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구내식당 근무자와 경비, 환경미화, 대리점 영업사원 등이 한데 모여 교섭을 요구하는 사안으로 직군이 다양하고 교섭 의제도 많기 때문이다. 해당 건에서도 산업안전 등 한 가지 의제만으로 사용자성이 인정될 경우 노조의 교섭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는 “산업안전 문제로 사용자성을 인정받아 교섭 테이블을 만들지만 이면에 숨겨진 노조의 요구는 임금 등 근로 조건”이라며 “중노위에서라도 기업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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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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