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셀트리온, '불법파견' 2심 승소…노동분쟁 판 뒤집혔다

1 day ago 4

제약·바이오까지 번진 불법파견 전선
1심 직고용 판결 뒤집혀... "파견 아냐"
"SOP는 지시 아냐, 하청 재량 인정돼"

인천 연수구 셀트리온 2공장 전경. 사진=셀트리온 제공

인천 연수구 셀트리온 2공장 전경. 사진=셀트리온 제공

국내 최대 제약사 중 하나인 셀트리온이 하청업체 직원과의 불법파견 소송에서 승소했다. 업체 직원을 직고용해야 한다는 1심 판결이 뒤집힌 것이다. 불법파견 소송이 제약·바이오 업계로도 확산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추후 관련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인천원외 민사2부(재판장 신종오 부장판사)는 셀트리온 하청업체 프리죤 직원 2명이 셀트리온을 상대로 낸 근로에 관한 소송 2심에서 전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1심에서 근로자 측 승소 판단이 나온 지 약 1년 7개월 만이다.

셀트리온 하청업체 근로자, "직고용하라"며 소송전

2005년 설립된 프리죤은 셀트리온에 청소·소독·경비업 등을 제공하는 회사다. 프리죤 직원 2명은 각각 2009, 2011년부터 프리죤 소속으로 셀트리온 공장에서 야간클리닝 업무를 수행했다. 야간클리닝이란 공장 근로자들이 퇴근하면 공장 무균실의 벽·바닥·천장을 청소하고 소독하는 업무다.

직원들은 2019년 셀트리온이 이들을 직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셀트리온이 프리죤과 형식적으로는 도급 계약을 맺었지만, 실제로는 근로자를 파견받은 구조라는 것이다. 파견 근로자가 동일 사업장에서 2년을 넘겨 일하는 경우 사업주는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셀트리온 측은 "야간클리닝 업무는 프리죤이 독자적으로 지휘했다"고 반박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사진=게티이미지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사진=게티이미지

2023년 1심 법원은 셀트리온이 표준작업지침서(SOP)를 통해 이들 업무를 실질적으로 지휘·명령했다고 보고 근로자 측 승소 판결을 내렸다. SOP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설정한 제조품질 관리기준(GMP) 준수 항목 중 하나다. 법원은 "SOP에는 야간클리닝 용액 종류와 용도, 희석비율과 살균 주기가 지정됐다"며 "직원들은 SOP에 구속돼 작업을 했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프리죤이 야간클리닝 업무에 전문성이 있다거나, 독립적인 기업조직이라 볼 수도 없다고 봤다. 사실상 셀트리온에 종속된 회사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셀트리온과 프리죤이 맺은 계약서에는 프리죤의 업무 전문성이나 기술력에 대해 언급이 없다"며 "업무용 의복, 장비, 살균용액도 모두 셀트리온으로부터 받았다"고 했다.

2심 "SOP, 지휘·명령 아냐... 업무도 원청과 달라"

2심 판단은 완전히 달랐다. SOP는 FDA 기준에 따라 업무 범위를 특정할 뿐 구속력 있는 지시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SOP는 GMP를 준수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고, 야간클리닝 팀도 GMP를 준수할 의무가 있다"며 "SOP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다는 이유만으로는 업무상 지휘·명령이라 볼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 판단에는 'SOP만으로는 업무를 할 수 없다'는 프리죤 직원의 법정 증언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프리죤 직원들의 재량이 필요한 업무란 것이다. 한 증인은 "(SOP에) 디테일하게 나오지 않은 부분은 반장이나 소장이 의논해 재량껏 한다"며 "가령 SOP는 '출입구에서 가까운 쪽으로 클리닝하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구조물을 피해서 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프리죤(서비스업)과 셀트리온(제조업)의 업종이 상이하다는 셀트리온 측 주장도 받아들여졌다. 재판부는 "야간클리닝 업무는 청정도 유지라는 서비스인 반면, 셀트리온이 영위하는 사업은 바이오의약품 제조 및 생산"이라며 "각 사 근로자들이 수행하는 업무 내용이나 목적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고, 대체할 수 있는 업무라고 볼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2심은 야간클리닝 업무의 전문성도 인정하는 동시에 프리죤이 독립적인 기업이라는 점도 확인했다. 재판부는 "특수 세척·살균 절차와 제품이 사용되는 만큼 전문성 없이 단순 업무를 반복한 것이라 볼 수 없다"고 했다. 또 "미화관리·보안관리·의전관리팀으로 조직을 갖춰 독자적으로 직원을 채용했다"며 "2019년에는 자체 스테인리스 특수 카트를 개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제약·바이오 노무 분쟁 판도 바뀌나

법조계에서는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불거지던 불법파견 소송 전선이 제약·바이오까지 확산하는 점에 주목한다. 기존에는 자동차나 제철, 화학 등 중후장대 업종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제약·바이오는 제조 공정의 자동화·표준화 정도가 비교적 뚜렷해 불법파견 소송이 벌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다만 직고용을 인정한 셀트리온 1심 판결이 뒤집힌 만큼 제약 기업들로서는 다소 안도할 만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셀트리온 사건이 대법원에서 어떻게 확정되느냐에 따라 관련 분쟁 흐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한 대형로펌 노동 담당 변호사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주요 대형 제약기업도 방역업체를 하청으로 두는 경우가 많다"며 "2심에서 하청과 원청의 업무 내용에 대해 인정한 사실관계가 대폭 넓어졌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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