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나경 기자] “세계 최대 온라인 결제업체 페이팔이 자체 스테이블코인(PYUSD)에 연 3.7% 이자를 주겠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은행업이다. 국내 은행이 적시에 대응하지 않으면 금융소비자가 더는 원화 예금 필요성을 못 느끼고 이탈할 수 있다. 누군가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야 한다. 전산, 자금세탁방지, 고객확인 시스템을 갖춘 은행이 공동으로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유통하는 것이 금융안정과 은행산업 육성 차원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다.”
![]() |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류창보 오픈블록체인·DID협회장이 7일 서울 서초구 NH디지털혁신캠퍼스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유통 위한 은행 컨소시엄 구성
류창보 오픈블록체인·DID협회장은 7일 서울 서초구 NH디지털혁신캠퍼스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스테이블코인 자체가 은행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급결제와 해외송금 모두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며 “점점 커지고 있는 미국 달러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은행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오픈블록체인·DID협회는 국민·신한·우리·농협·기업·수협은행과 금융결제원 등이 참여하는 ‘스테이블코인 분과’를 통해 스테이블코인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다양한 기술 기업과 협업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오픈블록체인·DID협회를 이끄는 류창보 회장은 미국 스테이블코인 시장 제도화가 급물살을 타는 지금이 국내은행이 공동 대응할 ‘골든 타임’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농협은행은 커스터디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디지털수탁자산(KDAC)에 지분투자를 한 후, 현재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유통을 위한 은행 컨소시엄 구성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류 회장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JP모건은 직접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BNY멜론과 블랙록은 수탁 업무를 하고 있다. 호주 ANZ은행도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발행·유통하는 사업을 실험 중이다”며 “해외 대형은행들이 이렇게 나서는 것은 스테이블코인이 은행업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류 회장은 해외송금과 지급결제가 일상이 된 2025년, 달러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원화예금의 대체재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류 회장은 “페이팔, 바이낸스는 코인을 예치해놓으면 이자를 주는데 이건 전통적 은행업이다. 코인에도 이자가 붙으면 원화예금 수요가 줄면서 국내은행의 원화 예금 기반이 약해질 수 있다”며 “은행들이 직접 스테이블코인에 대응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다”고 역설했다.
금융안정과 각종 기술 인프라, 소비자 보호를 고려했을 때에도 은행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에 적임자라는 것이 류 회장 생각이다. 그는 “테더, 서클 등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국내 곳곳에 침투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얼마나 들어오고 나가는지 통계조차 없다”며 “은행들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 달러 스테이블코인과 직접적으로 교환하면 자금증빙·용도확인 등 해외송금에 필요한 절차를 적용해 외국환거래법 등 법의 테두리 안에서 관리할 수 있다”고 짚었다.
은행으로서도 스테이블코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발행·유통의 주체가 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류 회장은 “다른 민간회사가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승인을 받아 우리나라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발행·유통하면 국내은행의 원화 기반 자금중개기능이 급격하게 약해질 수 있다”며 “은행은 예금자보호, 자금세탁방지 등 소비자 보호 장치를 갖추고 있다. 중요한 사업이면 은행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직접 발행·유통까지 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은행 공동 자회사 설립해 발행
은행의 구체적인 협업 모델로는 은행 공동 자회사(합작법인) 설립을 통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제시했다. 류 회장은 “미 상원의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안 지니어스액트(GENIUS Act) 표결 등 입법 동향을 볼 때 우리나라에도 곧 입법·제도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다”며 “은행이 모든 것을 직접 하면 시스템 리스크가 커질 수 있어서 자회사 형태로 공동 발행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각 은행이 개별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면 외려 외국 업체와의 협상력에서 밀릴 수 있다. 주요 스테이블코인 발행 업체들과 송금·지급결제 협력 기반 마련을 위한 협상 테이블까지 고려했을 때 은행이 공동으로 세운 ‘큰 사업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류 회장은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와 시중은행 발행 스테이블코인이 양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화폐나 정부 재정이 들어가는 것은 CBDC 기반 예금토큰으로 해야 한다”며 “양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했다. 이미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미 달러화 의존도가 높은 만큼 국내은행들이 달러 의존도를 낮출 원화·엔화 스테이블코인 직접 교환 등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류 회장은 “인프라 구축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 블록체인 기술업체들과의 상생을 고려할 때 지금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준비할 골든타임”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은행 수준의 망 분리, 고객확인의무(KYC), 자금세탁방지(AML) 등 인프라 구축에는 최대 수천억원 비용이 들 수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견해다. 류 회장은 “스테이블코인은 원화 실명계좌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 실명계좌 필요성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점점 스테이블코인으로 물건을 사고 투자를 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블록체인 기술기업도 함께 성장하는 기반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류 회장은 협회 스테이블코인 분과를 통해 은행이 공동 대응하겠다는 컨센서스를 세우고 자회사 설립을 준비하는 것이 그 시작이라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