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의 현대화는 인공지능(AI) 경쟁만큼이나 중대한 일입니다." (김재형 전 대법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와 공동으로 담보법과 불법행위법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를 1일 열었다. 민법 개정 작업을 진행 중인 법무부는 올해 초 민법 중 계약법 부분을 먼저 입법 예고한 데 이어, 담보법과 불법행위법의 현대화도 함께 추진 중이다.
이날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우천법학관에서 열린 행사에는 정웅석 형사·법무정책연구원장을 비롯해 전원열 서울대 법학연구소장, 김재형 전 대법관(법무부 민법개정위원회 검토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20여 명의 학계 및 전문가들은 이날 오후 내내 우리 담보법과 불법행위법의 개선 방향을 논의했다.
담보법에서는 현행 유치권 제도의 개선 방향이 주요 논의 주제로 떠올랐다. 유치권은 시공사가 공사대금을 받지 못한 경우 건물을 점유할 수 있는 권리로, 경매 절차에서도 효력을 인정받는다. 영세 건설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지만, 허위 유치권 행사 등 부작용도 컸다. 부동산 유치권은 2013년 민법 개정 추진 당시 폐지 논의가 있었지만, 끝내 실현되지는 않았다.
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부동산 유치권을 유지한다면 최소한 피담보채권을 목적물에서 발생한 채권(비용상환청구권·손해배상청구권)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며 "입법적으로는 일반 상사유치권을 폐지하거나, 유지하더라도 목적물에서 부동산을 제외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치권 등기 제도 도입에 대해선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종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등기부에서 어디까지가 최우선변제가 가능한지 혼란이 발생할 수 있어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킨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며 "이미 인정되는 유치권에 대해 부동산 유치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사회적으로도 수용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적 성격이 명확하지 않은 가상자산·암호화폐 등 디지털 자산을 담보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다. 해외 사례를 적극적으로 참고해야 한다는 제언이 이어졌다. 우리 대법원은 암호화폐가 재산성은 있지만 물건으로 보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디지털 자산의 담보물권은 통상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법조계는 해석하고 있다.
황원재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22년 미국은 통일상법전(UCC) 제12편을 개정해 암호화폐나 NFT를 '통제 가능한 전자기록(CER)'로 포섭하고 있다"며 "자산이 관리자에게 보관 중일 때에도 통제 상태로 간주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김 전 대법관은 축사에서 "2000년대 이후 세계 각국에서 민법전 편찬이 경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심도 있고 활발한 논의를 통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민법 개정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