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대표 된 '당 대포'…'인파이터' 정청래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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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8.02 17:36 수정2025.08.02 17:36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신임 대표는 19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의 강성 친명(친이재명)계 4선 의원이다.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아내 김인옥(58)씨 역시 10남매 중 막내다. 슬하에 3남을 뒀다.

여야 대치 국면에서 '당 대포'를 자처해왔다. 이른바 '사이다' 발언으로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고 있으나 같은 이유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1965년생인 정 후보는 건국대 산업공학과 재학시절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소속으로 주한 미국 대사관저 점거농성 사건을 주도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른 바 있다.

출소 후 마포에서 보습학원을 운영했다. 그러다 2002년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에 가입해 활동했다. 생활정치네트워크 '국민의 힘'의 초대 대표도 지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 속에서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서울 마포을에 출마해 처음 '금배지'를 달았다. 당시 정동영계로 분류됐던 그는 2007년 대선 때 정동영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정통들)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활동했다.

18대 국회에서 낙선 한 뒤 19대 때 재선에 성공했다. 당시 그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24일간 단식 농성을 했다.

2016년 20대 총선 때는 '컷오프' 당했다. 경선에서 떨어지거나 불출마를 선언한 인사들로 '더컸유세단'을 구성해 선거운동을 도왔고 총선 승리에 일조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재기했다. 지난해 4.10 총선에서 4선 고지에 올랐다.

정 대표는 2015~2016년, 2022~2024년 두 차례 최고위원을 지냈고, 국회에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과 법제사법위원장을 지냈다.

또 22대 국회 첫 법사위원장으로 이른바 '3대 특검법' 등 쟁점법안 통과를 주도하고, '검사탄핵 청문회' 등을 열며 야당 시절 대여(對與) 투쟁의 선봉에 섰다.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는 탄핵소추위원으로 활동하며 헌법재판소의 전원일치 파면 결정을 이끌었다.

이재명 대표 체제 1기 지도부에서 수석 최고위원으로 호흡을 맞췄다. 당 대표 출마의 변에서 "이 대통령과 저는 정치의 방향과 속도가 맞는 동지이자 베스트 프렌드"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정치활동 초기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이다 발언을 쏟아내고 지지자들과 소통해왔다.

노사모 활동 당시 '싸리비'라는 필명으로 쓴 글로 유명해졌다. 한때 엑스(X·옛 트위터) 등에 '자칭 SNS 전문가'라고 스스로 소개했다.

다만 그는 선명성과 투쟁력을 강조한 발언들로 크고 작은 설화(舌禍)에 휘말리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이던 지난 2015년 비문(비문재인)계 주승용 당시 최고위원을 향해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할 것처럼 공갈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공개 직격해 6개월 당직 자격정지를 받았다.

2021년 국정감사에서 해인사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로 지칭하고 사찰을 '봉이 김선달'에 비유해 조계종이 반발하자 공개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2020년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의 무공천 발언에 대해 "'혼자 멋있기 운동'은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으며 이번 전당대회 과정에서 당 지지층 일각에서 이른바 '수박'(비이재명계를 비하하는 말)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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