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범행에 이용된 허위 투자사이트라도 일반 투자자가 실제 금융투자상품 매매가 이뤄지는 시장으로 인식할 만한 외관을 갖췄다면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상품시장’으로 보고 무허가 시장개설 행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최근 이른바 ‘리딩방 투자사기’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모 씨(32)의 상고심에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본 원심 판단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김 씨는 중국인 총책을 정점으로 한 리딩방 투자사기 조직원들과 공모해 투자자 62명으로부터 주식 투자금 명목으로 84억여 원을 받아낸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국내외 주가지수와 연동되는 것처럼 꾸민 허위 투자사이트를 개설한 뒤 사이트 화면에 표시되는 예치금과 수익금 등을 조작해 피해자들이 실제로 수익을 낸 것처럼 속인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들이 수익금 출금을 요구하면 세금이나 수수료가 필요하다며 추가 송금을 요구한 뒤 사이트를 폐쇄하고 연락을 끊는 방식이었다.
김 씨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징역 4년으로 감형됐다. 상고심의 핵심 쟁점은 김 씨 등이 운영한 허위 투자사이트를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상품시장’으로 볼 수 있는지였다. 자본시장법은 거래소 허가를 받지 않고 금융투자상품시장을 개설하거나 운영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금융투자상품시장은 같은 법에서 ‘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의 매매를 하는 시장’으로 규정돼 있다.
2심은 김 씨의 다른 혐의는 대부분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해당 투자사이트가 피해자를 속이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을 뿐 실제 증권이나 장내파생상품 매매가 이뤄지지는 않았으므로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상품시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실제 매매가 있었는지만을 기준으로 금융투자상품시장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대법원은 “자본시장법상 ‘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의 매매를 하는 시장’에는 매매가 실제로 이뤄지는 시장뿐 아니라 통상의 주의력을 가진 평균적인 시장 참여자들이 증권 등의 매매가 실제로 이뤄진다고 인식할 만한 외관을 갖춘 시장도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무허가 시장개설 행위를 처벌하는 취지도 실제 매매 성사 여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허가받지 않은 시장을 개설·운영하는 행위 자체가 투자자 보호와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해칠 위험을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실제 매매가 없는데도 거래가 이뤄지는 것처럼 꾸민 시장을 만들어 투자자를 속인 경우에는 형사처벌의 필요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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