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첨단 산업이 '그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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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50조 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을 조성하며, ESG 금융과 K-택소노미를 접목한 산업정책 전환에 나섰다. 2차전지·수소·AI·반도체 등 핵심 기술이 녹색경제 활동으로 분류되면서 ‘그린’이 대한민국 미래산업의 공통분모로 부상하고 있다.

[한경ESG] 커버 스토리 - ESG 자금, 혁신 산업에 몰린다 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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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3월 5일 발표한 50조 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은 단순한 재정 지원책을 넘어 대한민국 산업정책의 방향 전환을 암시하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반도체, 2차전지, 디스플레이, 인공지능(AI), 바이오, 방산, 수소, 미래형 이동 수단 등 10대 첨단산업을 대상으로 초저리 대출뿐 아니라 지분 투자와 정부가 손실 위험을 감수(후순위 보강)하는 등 종합 금융서비스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른바 산업계 ‘부스터샷’으로 불리는 이번 기금은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중소기업에도 폭넓게 적용된다. 특히 이들 산업이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면, 한국의 첨단산업 자체가 ‘녹색’임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산업 자체로 녹색경제 활동에 해당하는 것은 2차전지, 수소, 미래형 이동·운송 수단이다. K-택소노미에서는 2차전지, 수소, 전기·수소 차량과 선박, 항공기(드론과 UAM 포함), 건설기계, 농업기계 등의 제조와 도입 활동 전반을 녹색경제 활동으로 보고 핵심 품목의 제조와 소부장, 연구·개발·실증(RD&D) 모두 녹색경제 활동으로 인정한다.

탈탄소 인프라가 곧 ‘혁신’

수소는 생산 단계에서는 그린 수소만을 녹색으로 간주하는데, LNG 등을 개질해 생산하되 탄소포집·저장(CCS)을 적용하는 블루 수소 생산도 ‘전환 활동’으로 2030년까지 한시적으로 인정한다. 수소를 직접 주입하는 발전 설비도 녹색경제 활동으로 인정하는데, 향후 그린 수소의 적극적 활용을 위해 수소 저장(예: 액화수소로의 변환·저장 설비 등) 및 이송 등 인프라 구축·개조·운영 관련 활동은 수소 종류와 무관하게 녹색으로 인정하고 있다.

미래형 이동·운송 관련 인프라도 K-택소노미에 포함된다. 이 중 전기 충전소, 전력망 접속 개선, 수소연료공급시설, 전기철도시설(GTX 등), 선박용 육상전원공급장치(AMP), 무공해 항만 하역 장비 등도 녹색으로 인정된다.

둘째, 활용 목적과 방법에 따라 녹색경제 활동이 될 수 있는 것은 로봇과 AI다. 로봇과 AI 자체가 K-택소노미에 따른 경제활동은 아니지만 자율 제조·스마트 팩토리 솔루션, 지능형 기계, 자율주행차, 스마트 조명, 스마트 그리드, 분산 에너지 시스템, 제로에너지 빌딩, 스마트 농업, 재난안전관리 시스템, 스마트 상수도, 지능형 공조 시스템 등은 K-택소노미가 녹색으로 분류하는 혁신 품목이다.

이 외에도 K-택소노미는 연구·개발·실증 관련 AI가 적용될 수 있는 다양한 온실가스 감축, 기후 적응, 순환경제, 물 관리·보전, 오염 방지·관리, 생물다양성 보전 관련 ICT 솔루션 시스템의 개발·구축을 포함하고 있다. 또 ICT 기반 에너지 관리 솔루션, 기후 재난 방지 및 기후 예측 시설·시스템의 개발과 구축·운영도 모두 포함되며 이러한 시스템 대부분에 AI가 적용될 수 있다.

반도체 F-가스 제거도 ‘친환경’

셋째, 얼핏 녹색과 무관해 보이지만 생산 과정에서 녹색경제 활동과 밀접하게 연계된 것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다. 이 두 산업과 관련해 K-택소노미에서 직접적으로 다루는 경제활동은 불소화합물, 소위 F-가스의 대체와 제거 관련 생산에 필요한 설비를 구축·운영하는 것이다. 특히 F-가스는 온실가스의 한 종류이기에 탄소중립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주요 반도체 생산국 중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해 F-가스의 상대적 관리 수준이 매우 높다. 향후 관련 업계의 공감대가 형성되면 K-택소노미에 반도체의 F-가스 기준을 설정해 타국 반도체 생산 시 한국 수준의 관리를 유도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종에서는 다량의 물을 사용·처리하는데, K-택소노미는 물의 공급과 수요 관리, 폐수 처리, 물 재이용, 대체 수자원 활용 등 다양한 활동을 녹색으로 인정하고 있다.

넷째, 방산 역시 녹색과 무관해 보이지만 택소노미와 연결될 수 있다. EU에서는 2023년 말 국방장관들이 EU 택소노미와 방산 투자의 연계성에 대해 공식 질의를 했다. 이에 EU는 택소노미가 특정 산업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과 함께 이동·운송 수단, 에너지, 건물 등의 측면에서 기준을 충족할 경우 방산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실제로 유럽의 대표적 방산 기업인 라인메탈은 EU 택소노미 정보공개를 통해 수소 관련 기술 제조(재순환 블로어, 고전압 펌프, 수소 음극 밸브 제조), 군수용 및 민간 부문 특수 차량 제조, 저탄소 기술 제조(차량 운용 시뮬레이터), 무공해 차량 및 부품 제조, 드론 제조, 노후 군용 차량 해체·수리·현대화 및 부품 재사용 등을 녹색경제 활동으로 소개했다.

한편 지속가능금융 정보공개 규정(SFDR)에서는 부정적 지속가능성 영향(PAI)의 기준을 명시했는데, 방산과 관련해 대인지뢰, 집속탄, 화학무기, 생물무기의 4가지 분야를 포함한다. 이에 ESG 투자자들은 EU 택소노미에서 방산 투자에 대한 보다 명확한 기준 제시를 요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바이오와 백신 관련이다. 사실 K-택소노미는 일반적 바이오와 백신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K-택소노미의 ‘기후변화 적응 관련 조사·연구’ 활동은 ‘제3차 국가 기후변화 적응 대책의 추진 과제에 포함되는지 여부를 인정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추진 과제 중에는 ‘기후변화에 따른 감염병 대응 강화’를 위한 기술 연구개발, 감시·대응 체계 운영 등이 포함되어 있어 바이오와 백신 관련 조사·연구 활동도 녹색으로 인정될 수 있다.

첨단산업 투자 시 3%대 금리 혜택도

올해 안에 ‘제4차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2026~2030)’이 발표될 예정이다. 이 경우 올해 말쯤 K-택소노미에서도 관련 기준이 반영될 것으로 예상되며, 기후변화 심화로 인한 감염병 대응 관련 바이오와 백신 산업의 역할도 주목된다.

우리나라의 녹색금융 지원 목표는 2030년까지 정책금융기관 420조 원, 민간금융회사 283조 원을 합쳐 703조 원에 달한다. 그리고 K-택소노미는 그 기준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첨단전략산업에 해당하는 대·중·소기업은 K-택소노미 대응을 통해 녹색금융 자금을 지원받아 금융 조달 비용을 낮출 수 있다.

기업의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중소기업에는 2~3%의 금리 혜택을, 대기업에는 1% 내외의 금리 혜택을 제공한다. 정부는 이러한 수요에 부응해 K-택소노미 보증, 이차보전 지원 재원을 대폭 확대하고, 이차보전 지원 기준도 사업장 온실가스 감축뿐 아니라 K-택소노미 적합 경제활동 전반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최첨단 산업이 곧 그린이고, 그린이 곧 대한민국의 최첨단 산업이기 때문이다.

임대웅 BNZ파트너스 대표
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UNEP FI) 한국대표·아세안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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