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프로야구-K팝 인기에 암표 몸살
야구 입장권, 정가 4~5배에 팔려… 선예매권-해킹 도구도 매매 활발
“암표 장사로 결혼” 자랑글 올려도, 매크로 안 쓰면 처벌할 수 없어
당국 “수사 의뢰-혐의 입증 한계”… 대금 받고 잠적하는 사기도 늘어
경찰, 전담팀 꾸려 수사 진행 중… 전문가 “문화산업 생태계 위협”
프로야구 경기와 문화예술 공연이 큰 인기를 얻으며 암표 거래 의심 사례가 4년 새 14배로 늘었다. 하지만 규제 공백 탓에 암표상이 ‘표 판 돈으로 결혼식을 올렸다’고 자랑해도 제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프로야구와 K팝 콘서트 등 스포츠와 공연·예술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입장권에 웃돈을 얹어 사고파는 암표 거래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한 티켓 재판매를 넘어 ‘대리 티케팅(댈티)’과 ‘아이디 옮기기(아옮)’ 같은 새로운 거래 방식도 성행하고 있다. 팬이 아닌 암표상이 입장권의 주 소비층이 되면 결국 비정상적으로 입장권 가격이 높아지고, 이는 콘텐츠 산업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암표 시장이 커지면서 티켓 사기 피해도 급증하는 추세다.》
“댈티는 가능합니다.”
티켓 예매 대행을 전문으로 한다는 한 업체의 오픈채팅방에 암표를 구하는 척 들어가 한 질문에 돌아온 답이다. 아이디 옮기기는 최근 몇 년 새 이 업계에 새로 등장한 티켓 거래 방법이다. 티켓 구매에 성공한 사람이 미리 약속한 시간에 티켓을 취소하면 실제 공연 등을 보려는 사람이 재빨리 이를 재예매하는 방식이다. 본인 확인을 하는 등 암표 단속이 강화되자 생겨난 수법이다.
그러나 요즘은 예매 사이트들이 취소된 표를 실시간으로 다시 잡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이 방식은 활용이 어렵다. 그 대신 업자들은 대리 티케팅은 가능하다고 홍보한다. 실수요자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건네받아 예매를 대신해 주는 방식이다. 이 업자는 티켓 정가 외에 수고비로 15만 원을 요구했다. 해당 뮤지컬 티켓 가격은 19만 원이었다. 정가의 80%에 달하는 웃돈이 붙는 셈이다. 이 업자는 티케팅 당일 공연 날짜, 회차, 매수, 아이디, 비밀번호, 생년월일을 3시간 전에 전달하면 작업을 진행한다고 안내했다.● 암표 의심 사례 4년 새 14배로 증가
실제 인터넷 중고 거래 플랫폼에선 구매 정가보다 4배 이상으로 높여 프로야구 입장권을 판매하는 게시물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12일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에서 열린 2025 프로야구 올스타전 입장권의 경우 1층 내야 지정석 가격을 장당 16만 원에 판매한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정가(3만2000원)의 5배다. 2만6000원짜리 내야석도 10만 원까지 가격이 뛰었다. 단순 티켓 거래가 아니라 예매 시스템에 먼저 접속할 수 있는 ‘선(先)예매권’을 판매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일부 암표 거래상들은 예매하기 버튼을 누르지 않고 바로 좌석 선택 창으로 진입할 수 있는 일종의 해킹 도구인 ‘직링(직접링크)’ 프로그램도 5000원에서 1만 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피케팅(피 튀는 티케팅)’에 실패해 표를 정가에 사지 못한 팬들은 중고거래 사이트를 찾게 되고, 거기서 웃돈을 얹은 티켓을 사거나 대리 예매를 의뢰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회사원 최모 씨(30)는 “티켓은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금지 항목으로 지정하고, 입장 시 철저한 본인 인증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12일 한 암표상은 자기가 판 프로야구 티켓 목록을 블로그에 올리고 “2800만 원의 수익을 올렸고, 티켓값을 제외해도 60∼70% 정도 마진을 남겼다”며 “(번 돈으로) 결혼을 준비 중이다”라고 남겨 공분을 샀다. 한 프로야구 구단 관계자는 “선예매권을 이용해 티켓을 확보한 뒤 재판매하는 사례가 있어 회원 정지 등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경찰과 함께 암표 범죄 대응을 위한 협의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매크로 안 쓰면 암표도 ‘합법’… 규제 사각지대
실제 올해 3월, 광주경찰청은 매크로를 이용해 사들인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입장권 210장, 유명 트로트 가수 콘서트 입장권 19장 등을 팔아 6400만 원을 챙긴 암표상 3명을 검거해 검찰에 넘겼다. 이들처럼 매크로 사용이 입증되지 않는 한, 웃돈을 받고 재판매했더라도 처벌이 어렵다. 매크로를 이용하지 않은 경우 두 법 모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부정판매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규정만 있을 뿐 별도의 처벌 규정이 없다.
경범죄처벌법상 경기장 등에서 웃돈을 받고 입장권 등을 되판 이에게 2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경기장 등 오프라인에만 한정해 처벌할 수 있다. 대다수의 판매 경로가 되는 온라인은 제외다. 현행법에 ‘규제 공백’이 있는 셈이다.
매크로 이용 여부를 판별하기 쉽지 않아 실제 수사 및 처벌된 사례도 드물다. 문체부 관계자는 “스포츠 암표신고센터 등을 통해서 암표 의심 신고를 받고 있지만, 매크로를 이용했는지 확실하지 않고 좌석번호가 특정되는 경우도 별로 없어 실제 수사 의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현재는 자신이 구매한 티켓의 정가에 비해 차익을 두고 파는 것 자체는 범죄가 아니고, 매크로를 이용해 구매했다는 것이 증명돼야 한다. 그러나 매크로를 이용했는지 수작업으로 구매했는지 외견상으론 구별이 잘되지 않는 게 사실”이라며 “티켓 예매 대행처의 적극적인 수사자료 제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돈 받고 잠적’ 티켓 사기도 3만 건 넘게 신고
광주경찰청은 지난해 광주를 연고지로 둔 프로야구 구단 KIA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 무대에 오른 뒤 티켓 사기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티켓 매매 관련 사기 범죄 전담팀’을 구성했고, 현재도 관련 수사를 진행 중이다. 광주청 관계자는 “주요 중고거래 플랫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좌석을 판매하겠다고 한 뒤 대금만 받고 좌석을 안 주는 방식으로 사기 범죄가 이뤄진다”며 “프로야구 인기가 해마다 늘어나면서 온라인 사기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음지 암표 거래가 스포츠, 문화 등 콘텐츠 산업에 타격을 주고 있다고 우려한다. 배성희 국회입법조사처 교육문화팀 입법조사관보는 “암표로 실제 소비자들이 공연 등 콘텐츠를 볼 기회를 상실한다면 결국 이는 수요 저하로 이어지고 제작자와 아티스트 등 산업 생태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소비자가 웃돈을 주지 않으면 원하는 표를 정가에 구하기 어려운 상황 자체가 시장 왜곡”이라며 “암표 판매 및 거래에 대해 적극적인 신고와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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