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적나라하게, 더 강렬하게… 더, 더, 더 나가고 싶었다”

8 hours ago 3

신작 장편 ‘치유의 빛’ 펴낸 강화길
“외모 강박에 빠진 절망감 넘어
더 깊은 어둠 끄집어내려 했다”

24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영추문 인근에서 만난 강화길 작가. 한국적 여성 서사에 천착해온 작가는 신작 ‘치유의 빛’에서 ‘몸’을 매개로 여성이 겪는 고통, 억압을 파고들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4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영추문 인근에서 만난 강화길 작가. 한국적 여성 서사에 천착해온 작가는 신작 ‘치유의 빛’에서 ‘몸’을 매개로 여성이 겪는 고통, 억압을 파고들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나비들은 이미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위장과 자궁, 혈관과 항문까지 번져가고 있어. 어떻게 하면 이것들을 몰아낼 수 있지? 어떻게 해야 해? 또 약을 먹어야 할까.’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환각에 빠진 여성이 있다. 37세 박지수. 그가 삼킨 건 나비 날개를 닮은 다이어트약 펜터민. 이른바 ‘나비약’이다. 타고난 몸피를 벗어나려는 발버둥과 악다구니.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11일 장편소설 ‘치유의 빛’(은행나무)을 출간한 강화길 소설가(39)는 흔히 ‘한국형 여성 고딕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불린다. 2020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았던 ‘음복(飮福)’ 등을 통해 가부장제 부조리에 노출된 여성 서사를 고딕 호러 스타일로 풀어내 왔기 때문이다.

24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강 작가는 “이전에 쓴 작품들도 ‘적나라하다’ ‘강렬하다’는 평가를 받은 편인데, 더 나가고 싶었다”며 “지금까지 들어갔던 것보다 더 들어가서 더 깊은 어둠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한계선을 두지 않았다”고 했다.

작고 마른 몸으로 존재감 없던 15세 박지수는 어느 날 살이 붙더니 급속도로 거대해졌다. 이후 거식과 폭식을 반복하며 키 176cm에 체중 50kg을 유지하는 게 그의 유일한 관심사가 된다. 강 작가는 “왜 저렇게까지 하느냐는 질문이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다”며 “지수의 절박함은 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고통을 해결하고 싶어서 애쓰는데 보편적인 방법들이 자신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 절망감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더, 더, 더 들어가려 했다”는 말마따나 작가는 집요하게 강박을 묘사한다. 체중 때문에 전교생 앞에서 망신을 당하는 대목에선 과연 강박을 초래한 게 지수인가 타인인가 묻는다. 어쩌면 아이에게 쏟아진 타인의 시선이 ‘사회적 감옥’을 만든 게 아닌가 질문하게 한다.

강 작가는 “루키즘(Lookism·외모지상주의)이 점점 강화되고 세분화되는 것 같다”며 “지수가 조금 빗나간 행동을 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그게 인물을 솔직하고 정직하게 따라가는 것”이라 설명했다. “요즘 아이돌들, 너무 아름답죠. 하지만 아이돌 역시 산업의 일부라는 것, 전문가들이 정교하게 계산하고 자금을 투입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걸 염두에 둬야 합니다.”

소설에서 지수는 어느 날 오른쪽 날개뼈 아래쪽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 통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 수 없다. 마침 부위도 ‘날개’여서 환상통을 의심하게 한다. 강 작가는 “통증을 날개뼈 아래로 설정한 것도 손이 잘 닿지 않는, 거울로 보려 해도 잘 안 보이는, 누군가 봐줘야만 하는 위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루키즘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작가는 자유로울까. 강 작가는 자신은 “늦게 깨달아 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20대 때 스모키 화장을 좋아했어요. 근데 누구나 한마디씩 하는 거예요. 너무 진하다고. 사람들은 참 무관심한데 관심 있는 것 같은 말을 잘해요. 내가 나를 사랑해줘야 한다는 것. 그걸 저도 많이 늦게 깨달은 것 같아요. 일찍 깨닫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라는 생각도 들고요.”

소설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가혹한 묘사들이 적지 않다. 강 작가는 “어차피 모두에게 이해받을 순 없다”며 “누군가 지수의 절박함에 공명한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모두가 다 좋아하는 건, 특히나 제 소설이 그러면 이상하지 않을까요?”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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