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세계 반도체 시장은 인텔과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 미국 기업이 60%를 차지했다. 일본의 점유율은 3할에 그쳤다. 하지만 일본 회사들이 메모리(D램)에 집중 투자해 가격을 낮추자 1980년대 중반 점유율은 80%까지 뛰었다. 히타치 도시바 NEC 후지쓰 미쓰비시 등 일본 회사가 D램 시장 1위를 돌아가면서 차지할 정도였다. 미국 회사들이 D램 시장 점유율 1할로 떨어진 건 당연했다. 인텔은 D램을 포기하고 중앙처리장치(CPU)로 도망갔다.
日 반도체 패권 막은 미국
미국 정부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일본 정부를 압박해 협상을 시작했다. 일본 정부의 보조금과 저리 융자, 연구개발(R&D) 지원 등을 불공정 경쟁 및 덤핑으로 규정했다. 그렇게 체결된 게 1986년 1차 미·일 반도체 협정이다. 그래도 미국 회사들이 살아나지 않자 일본산 TV와 컴퓨터에도 100% 보복 관세를 부과했다. 1991년과 1992년 2차, 3차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동시에 한국과 대만 말레이시아 등에 반도체 기술을 이전하기 시작했다. 밥 노이스 인텔 공동창업자 등 실리콘밸리 인사들은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 등을 키워 일본 독주를 막고 가격 경쟁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원천 기술은 미국이 갖고 조립과 패키징 등의 후공정을 맡기는 밸류체인을 구성한 것이다. 한국의 노력도 있지만, 그런 움직임이 더해지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 TSMC가 지금의 위치로 자리 잡았다.
고대역폭메모리(HBM)는 SK하이닉스의 히트 상품이 맞다. 반도체를 수직으로 쌓아 올려 용량을 대폭 늘린 반도체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찾아오자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생산시설이 한정된 상황에서 스마트폰 노트북 TV 냉장고 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범용 메모리 공급도 부족했다. 가격은 단숨에 2~4배씩 뛰었다. 그 결과가 지난 1분기 SK하이닉스 영업이익률(72%)이다.
이익 나눠먹기 할 때 아냐
자본주의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영업이익률을 낸 반도체 회사를 바라보는 미국 정부와 기업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여전히 반도체 설계 등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ASML이 노광장비(EUV)를 독점하고 있지만, 식각 증착 세정 등의 장비는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와 램리서치가 주도한다. 이 장비가 없으면 반도체 생산라인을 구축할 수 없다. 고순도 석영·가스·특수 케미컬 등도 마찬가지다. 칩 설계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핵심 장비 등 고부가가치 분야는 모두 미국 영역이다.
올해 약 500조원의 합산 영업이익이 예상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생태계에서 극히 일부인 메모리만 담당하고 있다. 엔비디아와 애플 구글 등은 반도체를 설계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를 사용해 TSMC가 생산하는 구조다. AI 호황 덕분에 일시적 메모리 부족으로 찾아온 두 회사의 호황은 다른 산업엔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AI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 기업이 직격으로 영향을 받는다. 실리콘밸리와 미국 정부가 40년 전 일본에 그랬던 것처럼, 반도체 밸류체인을 재구축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 이유다. 사이클 호황으로 낸 이익을 누가 얼마나 먹을 것인지를 두고 파업을 벌이며 싸울 때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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