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한 사람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주 노동자’이기 이전의 그 사람, 이주 노동자 이후의 그 사람이 궁금해요. 그래서 임금 체불 같은 당장의 문제를 묻기 전에 그 사람의 인생사부터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이주 노동자’라는 이름표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저절로 거두어지더라고요. 그 자리엔 그냥 한 사람이 남습니다.”
김숨 작가(52)가 최근 신작 장편소설 ‘딸기 이론’(민음사)을 펴냈다. 소설은 한국의 한 딸기밭 비닐하우스에서 7년째 숙식하며 일하는 미얀마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 ‘샤빼’가, 먼저 와 있던 캄보디아 출신 ‘보파’에게 보내는 긴 편지 형식이다.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이주 고려인, 산업재해 노동자, 시각장애인 등 사회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에 깊은 관심을 가져 온 작가는 이번엔 농촌 딸기밭으로 시선을 옮겼다.
작품은 2년 전 깻잎 농장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여성과 나눈 대화에서 출발했다. 8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김 작가는 “임금 체불로 전 고용주와 소송 중이던 분이었다. 그런데 그 문제만 묻게 되지 않더라. 어떻게 한국에 왔는지, 언제 돌아갈 것인지, 돌아가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삶 전반으로 질문이 번졌다”고 했다. 이후 작가는 김포 이주노동자 쉼터 등을 2년 넘게 드나들며 미얀마,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 다양한 국적의 노동자를 만났다.
소설에서 샤빼가 보파에게 건네는 편지는 사실상 닿지 않는 편지다. 두 사람의 모국어가 다른 탓이다. 그럼에도 편지 형식을 택한 이유를 작가는 “질문 던지기”라고 했다.

제목에 ‘이론’을 붙인 이유도 “샤빼가 자기 실존을 묻고 자신을 객관화해 가는 과정에 놓인 소설”이란 뜻을 담았다.
김 작가가 이번 작품에서 가장 경계한 건 ‘동정의 시선’이다. “혐오와 차별은 당연히 안 되지만, 안쓰럽고 불쌍한 존재로만 보는 태도도 결국 그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뭉뚱그리는 것”이라며 “그러면 여러 목소리가 있는데 하나의 목소리만 남는다”고 했다. 대신 그는 한 사람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서 “더 깊고 건강한 연민”이 생긴다고 했다.
왜 하필 딸기일까. 이주 노동자에게 ‘딸기’는 노동이자 빚이며, 고국에 보내는 송금이고,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의 존재 가치를 매기는 척도다. 김 작가는 석 달치 임금을 떼인 채 빚만 지고 돌아간 딸기 농장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고 딸기를 소재로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딸기는 모두가 좋아하는 과일의 여왕”이라며 “그런데 그 작고 흰 꽃잎이 따는 사람의 손엔 상처를 새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소설에선 한국어에 익숙하지 못한 이주 노동자가 고용주에게 ‘무지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현실도 짚었다. 하지만 그 문맹은 다른 언어가 모국어일 뿐 무지가 아니다. 김 작가는 그들이 조각난 한국어로 자기 이야기를 증언하는 걸 들으면서 “무지한 건 나라는 걸 알았고, 아름다움도 느꼈다”고 했다.“나의 감각이 멀어서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 고 신영복 교수님이 말했던 ‘모름다움’을 저는 그렇게 정의했어요. 제가 만났던 외국인 노동자분은 ‘모름다움’을 가지고 계세요. 그분들과 만날 때마다 제 무지와 무감각에 대해 반성하게 됐습니다.”
김 작가는 다음 작품도 이주노동자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국적도 나이도 다 다른 분들을 지금도 한 분씩 만나고 있다”며 “부모를 따라 뒤늦게 한국에 들어와 언어 장벽과 씨름하는 청소년들에게도 눈길을 두고 있다”고 했다.
“한 분의 이야기가 그대로 한 편의 글이 되는, 그런 조각들이 모이는 글쓰기를 계속하고 싶어요.”
김도연 기자 rep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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