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이 인정하는 예능감, 신성우가 인정하는 ‘찐’ 테리우스. 멀티 엔터테이너 안재욱의 골프 핸디는 12, 세 번의 79타 싱글 기록이 있다.
룰을 지켜라, 아버지와 함께 한 첫 라운드
“툭 치고 걸어가고 툭 치고 걸어가고, 그걸 왜 해야 해요?” 다이내믹한 운동을 좋아하던 20대의 안재욱이 골프를 배우라고 말하는 아버지(고 안경희)께 물었다. “그럼 농구나 축구는 골에 공을 왜 넣냐. 좋은 연기자가 되려면 몸으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잘해야 한다. 하다못해 자세라도 배워두어야 한다.” 기본기를 강조했던 아버지의 말씀이다.
일본에서 개인사업을 하던 안재욱의 아버지는 1997년 갑자기 사업을 접고 집에만 계셨다. 해병대 출신으로 승마, 수영, 골프, 탁구, 볼링까지 못하는 운동이 없는 만능 스포츠맨이었던 아버지. 안재욱은 그런 아버지가 마치 <라이언킹>에서 스카에게 당한 힘 빠진 무파사 같이 안쓰럽게 느껴졌단다.
안재욱은 아버지를 위해 깜짝 여행을 계획한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골프를 같이 하기 위해 일주일 아이언 레슨을 받는다. 밤 비행기를 타는 날 새벽 드라이버샷 레슨도 받는다. 드디어 도착한 괌 레오팔레스 리조트 CC. 잭 니클라우스와 아널드 파머가 설계한 세계적인 클럽에서 아버지와의 첫 라운드다. 드라이버샷은 포기하고 2번과 3번 아이언으로 티샷을 한다. 룰에 엄격한 아버지는 슬라이스, OB, 뒤땅 등 자세한 사항을 현장에서 알려주는 한편 멀리건 없이 모든 샷을 다 세셨다.
안재욱은 121타로 머리를 올렸다. 어린시절 아버지가 사다 주신 닌텐도 게임기로 골프 오락을 하며 골프에 관한 룰과 클럽 거리감 등 게임 지식을 습득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아들이 직접 만든 요리를 드시고, 또 첫 골프 라운드를 함께 하며 기쁘게 환히 웃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까지 가슴에 남아있다. 요즘 KBS 드라마 <독수리 오형제를 지켜라>에서 유명 호텔 회장 역으로 출연해, 10년 만에 원조 ‘로코’ 배우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는 안재욱의 아버지와 첫 라운드 기억이다.
신인가수상을 휩쓴 배우, 한류의 시작을 만들다
신동엽이 인정하는 예능감, 신성우가 인정하는 ‘찐’ 테리우스. 대한민국 대표 엔터테이너 안재욱은 1994년 MBC 공채 23기로, 드라마 <눈먼 새의 노래>로 데뷔했다. 안재욱은 시각장애인 강영우 박사 역할로 큰 호평을 받으며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드라마 <짝>, <호텔>, 뮤지컬 <베이비 베이비>, <아가씨와 건달들>, 연극 <한 평 반짜리 혁명> 등 다양한 작품의 주·조연을 맡았다.
안재욱은 1997년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에서 반항기 있는 강민 역으로 여심을 뒤흔드는 신드롬을 일으키며 단숨에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극 중 노래한 ‘FOREVER’를 수록한 앨범을 발매하여 6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 신인가수상을 휩쓸었다.
<별은 내 가슴에>는 중국 등 범아시아권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는데, 이것이 한류의 시작이다. 드라마 <복수혈전>(1997), <해바라기>(1998), <안녕 내 사랑>(1999), <나쁜 친구들>, <엄마야 누나야>(2000) 등 당시 안재욱의 모든 출연작들이 30% 이상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1998년에는 영화 <러브 러브>로 스크린에 데뷔하였고 같은 해 영화 <찜>에서는 여장남자라는 파격적인 역할로 제19회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을 수상했다.
2000년 초부터 중국에서 광고 출연과 콘서트 개최 등 활동을 했고 한중 합작 드라마 <백령공우(아파트)>(2001)에 출연했다. 2003년 발표한 정규 4집 앨범의 타이틀곡 ‘친구’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드라마 <선녀와 사기꾼>(2003), <천생연분>, <오! 필승 봉순영>(2004), <미스터 굿바이>(2006)에 출연했고, <오! 필승 봉순영>으로 KBS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차태현과 KBS 라디오 <안재욱 차태현의 미스터라디오>의 DJ로 진행을 맡기도 했는데 방송 3사 청취율 1위를 기록하며 KBS 연예대상 최우수 라디오 DJ상을 수상했다. 2008년 사전제작 드라마 <사랑해> 출연 이후, 2011년 64부작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원톱으로 열연을 펼치며 2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뮤지컬에서는 <살인마 잭>(2009), <더 리퍼>(2010), <락 오브 에이지>(2011), <황태자 루돌프>(2012), <태양왕>(2014), <아리랑>(2015),<영웅>(2017), <광화문연가>(2017)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2017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트벌에서<영웅>으로 올해의 스타상 수상, 2018년 역시<광화문연가>로 남자 스타상을 수상했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연기, 작가에게 인정받는 배우
“왜 이렇게 잘생긴 거야, 우리들끼리 만나면 서로 그런다. 데뷔나 활동 시기가 겹치는 배용준, 이정재, 정우성, 장동건 배우들은 그냥 한눈에 봐도 너무 잘생겼다. 그들과의 경쟁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연기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것이 좋은 연기다. 상대방을 리드하며 따라오게 하는 연기보다 상대방을 받아주는 연기를 해야 상대방과 호흡이 더욱 좋아져 공감 가는 연기가 나온다. 모든 작품의 모든 캐릭터들이 어렵고 각각 특별하다. 산통을 겪은 후 낳은 아이와 같이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캐릭터의 헤어스타일, 의상까지 꼼꼼하게 분석하고 연구하는 각고의 과정과 아버지에 물려받은 기본 정신은 데뷔부터 지금까지 드라마·영화·뮤지컬 배우로서, 또 가수로서 장르를 넘나드는 멀티 엔터테이너 안재욱에 대해 ‘엄지 척’ 이견이 없게 한 이유일 것이다.
“뮤지컬 <황태자의 첫사랑>의 한국 첫 공연을 올리고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 혼과 작가 잭 머피가 다가와 성공적이라며 훌륭했다고 극찬했다. 작가 잭 머피는 지금까지 공연된 황태자 중 본인이 쓴 황태자에 가장 잘 맞았다고 덧붙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작가에게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 안재욱은 말한다.
성격 좋은 연예계 마당발, 유머와 장난기 많은 웃음 뒤에는 넉넉한 인품까지 갖췄다. 안재욱은 2016년부터 적십자 홍보대사와 고액기부자 클럽인 레드크로스아너스 클럽에서 활동하며 지진 피해자를 돕기 위한 튀르기예 방문, 산불피해복구를 위한 자선골프 등 크고 작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살피고 있다.
인터뷰 도중 테이블로 어린 아르바이트생이 주뼛주뼛 다가왔다. “저, 안재욱씨 맞으세요?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 되지” 하고 대답하는 안재욱을 보고 아르바이트생은 순간 당황하여 눈이 커다래졌다. “몇 장 해주면 돼요?” 바로 이어 말하며 미소 짓는 안재욱을 보곤 아르바이트생도 방긋 웃는다. 이름을 물어보고 정성스럽게 어머니의 것까지 여러 장 사인을 해주는 스타 안재욱의 얼굴이 참으로 빛났다.
[writer 이지희]
이지희┃현재 국가유산디지털보존협회 부회장. 기획자, 프로듀서, 마케터 등으로 문화예술계 다방면에서 일했다. 베스트 스코어 2 오버 기록을 가진 골프 마니아로 골프와 사랑에 빠진 예술인들의 활동과 에피소드를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