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원재연 기자] 원화가치가 치솟은 달러에 밀리면서 한국 기업을 바라보는 외국계 사모펀드(PEF)의 셈법도 달라지고 있다. 같은 원화 가격의 매물이라도 달러를 들고 들어오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전보다 낮은 가격에 담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9일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전일 원·달러 환율은 주간 거래 기준 1535.0원에 마감했다. 앞서 환율은 지난 8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인 1555.2원으로 출발했으며, 등락을 거쳐 16거래일 연속 1500원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고환율 흐름은 국내 PEF와 외국계 PEF의 투자 온도 차를 키우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국내 운용사들이 대형 거래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사이 외국계 운용사들은 달러 자금력을 바탕으로 국내 성장 자산을 들여다보고 있다. 원화 약세로 인수 부담이 낮아진 데다 국내 투자심리 둔화로 경쟁 강도도 완화되면서 글로벌 운용사 입장에서는 한국 매물의 가격 매력이 커진 상황이다.
실제 달러 기준 인수 부담은 환율 수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만일 1조원 규모의 원화 매물이 있다면 환율이 1420원대일 때 달러 기준 약 7억달러지만, 1550원대에서는 약 6억4000만달러로 내려간다. 달러 투자자 입장에서는 같은 기업을 8% 안팎 낮은 가격에 검토할 수 있는 셈이다.
국내 PEF 시장에 자금이 마른 것은 아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기관전용 PEF 약정액은 153조6000억원, 이행액은 117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단순 미이행 약정액만 36조1000억원에 이른다. 다만 남아 있는 자금이 실제 투자로 이어지는 속도는 둔화했다. 지난해 투자 집행액은 24조1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5.8%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홈플러스 사태 이후 국내 PEF의 대형 바이아웃 운신 폭이 좁아졌다고 보고 있다. 앞서 MBK파트너스가 인수한 홈플러스가 지난해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간 이후 사모펀드의 인수금융 구조, 자산 매각, 고용 책임을 둘러싼 논란이 커졌고 금융당국의 관리 감독 강화 논이가 계속되고 있다. 대형 인수에 대해 운용사가 져야 할 평판 부담이 커진 점도 신규 투자 판단을 무겁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외국계 PEF는 국내 주요 거래에서 존재감을 점차 키워나가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대기업 계열사 카브아웃보 K푸드나 K뷰티, AI 데이터센터, 기업용 소프트웨어 등 해외 확장성이나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갖춘 자산에 관심이 몰리는 분위기다.
최근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칼라일의 KFC코리아 인수가 대표적다. 칼라일은 지난해 12월 오케스트라PE와 KFC코리아 지분 100%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고, 올해 4월 거래를 마무리했다. 매각가는 2000억원 안팎으로 거론됐다. KFC의 경우 글로벌 브랜드 운영 역량과 K푸드 확장성을 갖춘 매물이라는 점이 투자 배경으로 꼽힌다.
AI 관련 자산에도 외국계 자금이 이어지고 있다. AI 전환 수요가 붙은 소프트웨어와 데이터센터는 매출 성장과 회수 가능성을 함께 설명할 수 있는 자산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앞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지난 4월 삼성SDS가 새로 발행하는 8억2000만달러(약 1조2200억원) 규모 전환사채를 인수하기로 했다. EQT는 지난해 11월 SI 기업 더존비즈온 경영권 지분 인수 계약을 맺은 뒤 지난 4월까지 지분율을 94%까지 끌어올렸다. 글로벌 최대 운용사인 브룩필드 역시 국내 데이터센터 투자를 확대하며 AI 인프라 자산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환율 상승이 외국계 PEF의 국내 딜 증가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에도 고환율 환경이 이어졌지만 한국 내 글로벌 PE·VC 거래는 줄었다.
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내 글로벌 PE·VC 거래금액은 85억8000만달러(약 13조원)로 전년 대비 38.8% 감소했고, 건수 역시 전년 대비 23.4% 줄었다. 원화 약세만으로 거래가 늘어나기 어렵고, 기업의 에비타(EBITDA) 성장률과 현금창출력, 내부수익률(IRR), 밸류업 여지가 뒷받침돼야 실제 집행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환헤지 비용과 인수금융 환경도 변수다. 외국계 PEF는 달러로 자금을 조달해 원화 자산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환율 변동성이 커질수록 헤지 비용을 함께 따져야 한다. 고금리 국면에서는 차입을 활용한 바이아웃 거래의 기대수익률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매도자와 매수자 간 가격 눈높이 차이가 벌어진 상황에서는 환율 효과만으로 거래가 성사되기도 쉽지 않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달러 강세는 해외 투자자에게 한국 기업의 진입 가격을 낮춰주는 요인"이라면서도 "엑시트 시점의 환차손 가능성과 매크로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환율만 보고 투자에 나서기는 어렵다. 글로벌 매출 기반이나 해외 확장성을 통해 환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기업 중심으로 선별적인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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