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몸짓의 미묘한 어긋남… 베일 벗은 무용극 ‘어셈블리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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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골대가 드높이 걸려 있는 마을회관(Assembly Hall). 중세 어느 가문을 상징했을 법한 문장과 깃발이 웅장하게 걸린 가운데, 출입구에 ‘EXIT’ 전등이 빨갛게 빛난다. 이곳에 모인 몇몇 사람들은 중세 기사단을 재현하는 축제를 여는 동호회 ‘자애와 보호의 기사단’ 회원들. 플라스틱 의자를 나란히 놓고 앉은 이들이 심각하게 의논한다.

“커피를 지금 내놓을까요, 아니면 나중에?”

캐나다 출신 스타 안무가 크리스털 파이트와 극작가 조너선 영의 화제작 ‘어셈블리 홀’이 5~7일 한국을 찾았다.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선보인 작품은 지난해 영국 올리비에상 무용 작품상 수상작. 신규 회원도, 돈도 없는 쇠락한 동호회의 지루한 회의와 그 가운데 펼쳐지는 중세 판타지가 웃음과 탄성을 오가게 만든다.

이야기는 ‘자애와 보호의 기사단’ 정기총회에서 존재감 없던 소심한 회원 ‘데이브’가 캐스팅 보트를 쥐면서 펼쳐진다. 동호회 존폐를 가를 최종 투표에서 의견은 3:3으로 대립하고, 데이브는 평소처럼 대세에 따라 ‘예스’ 라고 할지, 아니면 용기를 내 ‘노’라 한 뒤 이 무기력을 끝낼지 기로에 선다. 순간 그가 중세 투구를 쓰면서 장면은 판타지로 넘어간다.

마을 회관의 붉은 장막이 열리자 신비로운 숲이 등장하고, 무용수들이 반짝이는 갑옷과 투구, 칼을 휘두르며 바로크 회화 같은 웅장한 장면이 연출된다. ‘기사’가 된 데이브 앞에 흰옷을 입은 여인이 나타나 “네가 필요한 말을 하지 않았다”며 원망한다. 소심한 데이브는 내적 갈등에 빠지는데, 이를 무용수 7명이 모두 데이브의 옷을 입고 스톱모션으로 연출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파이트는 “마을회관에서 관객은 어디서나 마주하는 소소한 정치 싸움과 갈등을 보게 된다”며 “이들은 중세 문화에 대한 애정으로 모였지만, 해마다 그것을 이어가는 과정은 점점 이들을 지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든 구조들(회의 규칙, 종교, 민주주의)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러면서 동시에 얼마나 연약한가를 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독특한 요소는 무용이지만 대사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무대에서 녹음된 음성이 재생되고 이에 맞춰 안무가들이 립싱크 연기를 한다. 대사가 간단하기에 관객은 말의 내용보다 안무가들의 커다란 제스처를 눈여겨본다. 파이트는 “조너선과 저는 종종 말과 행동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어긋남을 탐구해 왔다”고 했다. 데이브가 정기총회에서 ‘예스’라고 말할지라도, 그 한마디 안에 숨은 수많은 맥락과 드라마를 몸짓으로 펼쳐내 현대적이고 참신하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무엇이 중요한가?’를 자문하게 된다.

“가슴의 미세한 오르내림, 눈꺼풀의 떨림, 손끝의 긴장 같은 ‘움직임’이 무언가가 살아있다는 환상을 만듭니다. 그런데 움직임은 환상에 불과한가, 아니면 그 자체가 깊은 진실에 닿아 있는가? 이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습니다.”(파이트)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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