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기 분당차병원 신경외과 교수
만 75세 현 최고령 외과의
지금도 주 3회씩 수술 집도
응급 상황에선 의사도 탈진
손 놓는 순간 낭떠러지 추락
산에서 배운 끈기로 버티죠
에어로빅도 30년째 매일해요
"전공의 4년 차 마지막 수업으로 '암벽 등반'을 시키는 이유가 있어요.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가져라. 우리를 찾아오는 환자들이 얼마나 절박한 심정인지 느껴보라는 것이죠."
1950년생으로 올해 나이 만 75세, 국내 최고령 '칼잡이(외과의사를 부르는 의사들의 은어)'.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이 필요한 뇌종양 수술을 집도하는 팔팔한 현역, 조경기 분당차병원 신경외과 교수다. 요즘도 적게는 5~6시간에서 많게는 10시간까지 이어지는 뇌 수술을 매주 3회씩 거뜬히 해낸다. 건강 비결을 물었더니 "산악인은 본업, 외과의사는 부업"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가 다루는 암종은 뇌암 중에서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교모세포종'이다. 남들은 꺼리는 어려운 수술도 기꺼이 맡는다는 소문만 듣고 '낭만닥터 조사부'인 줄 알았더니 열혈 산악인이었다.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조 교수가 가장 먼저 꺼내 보인 건 '산악인 조경기'라고 쓰인 감사패였다. 수많은 산악사고 환자들을 정성껏 치료한 공로로 2012년 대한산악연맹에서 받은 것이다. 조 교수는 "의사로 살면서 대통령상도 받아봤지만 그 어떤 훈장보다 이 감사패가 제일 소중하다"며 웃었다.
전문 산악인 못지않게 화려한 등반 이력을 자랑한다. 1996년 마나슬루봉 6800m, 2000년 K2 7500m, 2002년 옐브루스 5642m 등이 대표적이다. 2014년엔 세계 최대 단일 암벽인 미국 요세미티의 엘캐피탄 등정에도 성공했다. 그는 "4박5일간 암벽에 매달려 먹고 자고 했는데 사실 최근에 갔을 땐 죽을 뻔하긴 했다"며 겸연쩍은 듯 웃었다.
산은 조 교수의 평생 벗이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자란 그는 틈만 나면 뒷산 범바위에 올랐다. 연세대 의대에 입학한 뒤엔 산악회에 가입해 6년 동안 한 주도 쉬지 않고 암벽을 탔다.
30년째 에어로빅을 하는 것도 등산에 필요한 균형감각을 키우기 위해서다. 지금도 조 교수는 매일 오후 7시만 되면 에어로빅 헬스장으로 향한다. 언제나 그랬듯 회원 중 유일한 남자이지만 꾸준함만큼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한다. 그는 "미국에 연수갔을 때도 현지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에어로빅 등록이었다"고 말했다.
소위 '운동 좀 한다'는 주변 지인과 후배들에게는 암벽 등반을 권한다. 특히 그의 지도 아래 수련 중인 신경외과 4년 차 전공의에게는 사실상 '졸업요건'과도 같다. 암벽 등반이 주는 메시지가 외과의사로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조 교수는 "뇌 수술을 하다 보면 지혈이 몇 시간씩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면 탈진 상태에 빠져 손을 놓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하지만 그 순간마다 암벽 위에 덩그러니 매달려 있는 내 모습을 떠올린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손을 놓는다는 건 곧 끝없는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일"이라며 "당시 두려움을 떠올리면 절대 수술을 포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그렇게 산에서 배운 끈기를 수술실에 고스란히 가져오고 있다.
조 교수가 꼽은 또 다른 건강 비결은 낙천적 사고다. 아내가 '당신은 과하게 긍정적'이라고 핀잔을 줄 정도로 그에게선 늘 에너지가 넘친다. 주치의의 긍정적 사고와 에너지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전달된다. 진료실 한편에 쌓아 놨다가 환자들에게 나눠주는 '기적 사례집'이 대표적이다.
조 교수는 "평균 여명이 14~16개월인 교모세포종 환자를 가장 많이 만나는데 대부분 절망적인 모습"이라며 "그럴 때마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어떤 기적을 만들어내는지 실례를 모아둔 자료집을 꼭 읽어보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병원에서 '수술이 안 된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온 환자들에게는 '10명 중 8~9명은 산다'고 강조한다"며 "실제 희망을 갖고 치료에 임한 교모세포종 환자들은 10~20년도 거뜬히 지낸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의 삶이 언제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2006년 대장암 수술을 받은 아내는 한동안 건강을 유지했으나 2년 전 암이 재발해 뇌와 폐로 전이됐다. 그는 직접 아내의 뇌종양 수술을 집도했다. 조 교수도 2년 전 전립선암 수술을 받았다. 매일 밤잠을 설치지만 초긍정론자는 아예 접근법이 달랐다.
조 교수는 "원래 보름달을 무척 좋아하는데 새벽에 눈을 뜨니 달 사진을 찍고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며 "요즘은 아내와 함께 이곳저곳 다니면서 함께 보내는 시간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뇌종양 재발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시험에서도 그는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조 교수는 "똑같은 면역항암 치료제를 투여했지만 우리 병원에선 모든 환자가 생존한 반면 다른 기관에선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며 "그만큼 긍정적 사고가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