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엔 이름만, 마지막 길도 ‘빈자들의 성자’

1 week ago 8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식 엄수
콘클라베 이르면 내달 5일 시작

“파파(papa·교황) 프란치스코, 그라치에(grazie·고맙습니다)!”

26일 오전(현지 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 주변 시내엔 약 40만 명이 운집해 애도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20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례미사 직후 이탈리아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으로 운구되자, 세계에서 모여든 추모객들은 슬픔에도 감사를 표하며 가는 길을 축복했다.

이탈리아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마련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묘. 로마=AP 뉴시스

이탈리아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마련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묘. 로마=AP 뉴시스
‘빈자(貧者)들의 성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미사가 이날 오전 10시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엄수됐다. 교황의 유언대로 장식 없는 십자가 문양만 새겨진 목관이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가 박수로 교황을 맞았다. 장례미사는 입당송(入堂頌) ‘주여, 영원한 안식을 내리소서’를 시작으로 기도와 성경 강독, 성찬 전례, 고별 예식 순으로 2시간가량 진행됐다.미사를 주례한 추기경단장인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은 “교황은 당신의 허약함과 고통의 막바지에도, 지상의 삶 마지막 날까지 자기 봉헌의 길을 따르고자 하셨다”며 “이제 우리는 사랑하는 그의 영혼을 하느님께 맡겨 드린다”고 애도했다.

26일(현지 시간) 바티칸에서 거행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미사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관이 성 베드로 광장으로 운구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날 장례미사에는 앞줄에 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운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 등을 포함한 170여 개국 대표단이 참석했다. 바티칸=AP 뉴시스

26일(현지 시간) 바티칸에서 거행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미사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관이 성 베드로 광장으로 운구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날 장례미사에는 앞줄에 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운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 등을 포함한 170여 개국 대표단이 참석했다. 바티칸=AP 뉴시스
이날 미사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와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 170여 개국 지도자 및 대표단이 참석했다. 한국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끄는 민관합동 조문사절단과 염수정 추기경,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등이 참석했다.

교황청은 이날 공식 추모 기간인 ‘노벤디알리(Novendiali·9일간의 의식)’를 선포했다. 9일 동안 매일 추모 기도회가 이어지며, 교황의 묘는 27일부터 일반에 공개됐다. 차기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Conclave·추기경단 비밀회의)는 이르면 다음 달 5일 시작될 예정이다.

“그라치에 파파”… 40만명 배웅속 ‘포프모빌’ 타고 소박한 작별

[프란치스코 교황 영면]
“교황,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에 관심”… 삼중관 대신 아연 덧댄 목관 입관
시민 배웅 위해 사람 걷는 속도 이동… 교황 요청에 난민-노숙인 등이 맞이


“교황께서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성모 마리아) 품에 안기시는 마지막 여정은 그가 평생 사랑했던 가난한 이들의 배웅을 받는 아름다운 이별이었다.”(베노니 암바루스 이탈리아주교회 주교)

26일(현지 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관을 운구하는 차량이 이탈리아 로마의 대표적 유적인 콜로세움 앞을 지나고 있다. 이 차량은 교황이 행사 때 타던 의전 차량 ‘포프모빌’을 개조한 것이다. 장례미사 직후 바티칸을 떠난 차량은 로마 시내를 가로질러 장지인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으로 향했다. 로마=AP 뉴시스

26일(현지 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관을 운구하는 차량이 이탈리아 로마의 대표적 유적인 콜로세움 앞을 지나고 있다. 이 차량은 교황이 행사 때 타던 의전 차량 ‘포프모빌’을 개조한 것이다. 장례미사 직후 바티칸을 떠난 차량은 로마 시내를 가로질러 장지인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으로 향했다. 로마=AP 뉴시스
26일(현지 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장례미사가 끝나자, 거리에 모습을 드러낸 건 작고 아담한 흰색 무개차(無蓋車)였다.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즐겨 탔던 ‘포프모빌(Popemobile)’이다. 40만 명이 모여든 마지막 가는 길도 교황은 평소와 다름없이 소탈한 행보였다. 로마 경찰의 호위 외엔 앞뒤로 각각 2대씩의 의전 차량만 따를 뿐이었다.

관이 운구되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앞에서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흰 장미꽃을 든 40여 명이 교황을 맞이했다. 모두 난민이나 죄수 출신이거나 노숙자인 이들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마지막 조의를 표하도록 해 달라”는 교황의 생전 요청에 따른 것이다.

● “하느님께서 그에게 영원한 행복을 주시길”

이날 오전 10시부터 열린 장례미사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신자 등 25만여 명과 로마 시민 등 40만여 명이 참석했다. 추기경 220명과 주교 750명, 사제 4000여 명이 참석해 교황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순례자와 난민부터 세계의 유력 지도자와 왕족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추모객들이 몰려들었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모든 사람에게 열린 마음을 지닌, 모든 이들의 교황이었음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고 전했다.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은 강론에서 “교황님께서 지상에서 영원으로 건너가신 이후 지난 며칠 동안 우리가 목격한 넘쳐나는 사랑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얼마나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에 감동을 주었는지 말해 준다”고 했다. 그는 “교황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기까지 당신 양들을 사랑하신 착한 목자이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셨다”며 “모든 이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열망하셨으며,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두드러진 관심을 기울이셨고, 특히 우리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 소외된 이들에게 그렇게 하셨다”고 했다.

50년 가까이 교황청에서 재직한 레 추기경은 다음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의 수장이기도 하다. 다만 91세의 고령으로 투표권은 없다. 차기 교황 선출권은 80세 미만의 추기경에게만 주어진다.

●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마지막 길

역대 교황의 경우, 장례미사를 마친 뒤엔 사이프러스와 아연, 참나무 등 세 겹으로 된 삼중관 입관 절차를 거쳤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11월 장례 예식을 개정해 삼중관 대신 아연으로 내부를 덧댄 목관 하나만 쓰도록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목관 속에는 고위 성직자의 책임과 권한을 상징하는 팔리움(양털로 짠 고리 모양의 띠), 재위 기간 주조된 동전과 메달, 그의 재위 기간 업적을 담은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가 철제 원통에 봉인돼 넣어졌다.

장지인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으로 가는 운구 차량은 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시민들이 교황과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게 사람이 걷는 속도로 천천히 이동했다. 20여 분이 지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도착한 교황의 관은 구약성서 시편을 노래한 그레고리안 성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안으로 들어갔다. 교황의 묘는 유언대로 성모 성화 ‘로마인들의 구원’이 걸려 있는 파올리나 경당과 스포르차 경당 사이에 마련됐다. 비석엔 ‘프란치스쿠스(Franciscus)’라는 라틴어 이름과 십자가 모양만 새겨졌다.

하관 의식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탈리아 매체들은 “다시 한번 성수가 뿌려지고, 매장이 이뤄졌다. 대성전 공증인이 매장 사실을 증명하는 공식 문서를 작성해 참석자들 앞에서 낭독하고, 추기경들과 전례 담당 고위 성직자들이 서명하면서 의식은 끝을 맺었다”고 전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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