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반도체학과, 지방 의대 성적도 추월
수험생·학부모들, 학과 입학 문의 이어져
전문가 “산업 빠르게 변화…신중히 선택”
단기적 ‘인재 양성 정책’ 비판의 목소리도
26일 교육계에 따르면 서울 소재 5개 반도체 계약학과의 2026학년도 정시 합격 점수는 서울대 자연계열 학과를 웃돌았다. 일부 학과는 지방권 의대 수준도 추월했다.
종로학원이 2026학년도 정시 합격 점수(국어·수학·탐구영역 백분위 평균, 최종 등록자 중 상위 70% 컷)를 분석한 결과 서울 주요 대학 반도체 계약학과 5곳의 평균 합격 백분위는 96.2점으로 서울대 자연계열(95.8점)보다 0.4점 높았다. 한 학과는 지방권 의대보다 점수가 높았고, 나머지도 의대와의 점수 차가 0.2~4점에 불과했다.
반도체 계약학과는 대학이 기업과 협약을 맺고 운영하는 채용 연계형 학과다. 현재 삼성전자는 7개 대학, SK하이닉스는 3개 대학과 계약학과를 운영 중이다. 실제 입시 커뮤니티에는 반도체 계약학과 지원 여부를 묻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밝힌 A양은 “약학과와 반도체 계약학과 중 어느 곳을 지원할지 고민”이라며 “향후 전망을 봤을 때 어디가 더 좋은 선택지일지 추천해달라”고 물었다. 댓글에는 “요새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는 반도체 학과가 인기” “취업을 생각하면 반도체학과가 낫다”는 등 반응이 이어졌다.
고3 수험생을 둔 학부모 B씨는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부터 꾸준히 반도체학과 입시를 준비하며 생활기록부를 채워왔다”며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올해 반도체학과 성적 기준이 많이 오를 거라 학교를 낮춰야 한다’고 해 마음이 심란하다”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수험생뿐만 아니라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반도체 열풍은 감지된다.서울의 한 사립대 공학계열에 재학 중인 김모(24)씨는 “취업 시기가 다가오면서 반도체 기업의 연봉이 매우 높다는 걸 알게 됐다”며 “장기적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있는 분야라고 생각해 전과나 반수를 통해서라도 관련 학과 진학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다른 사립대 상경계열에 재학 중인 이모(25)씨도 “최근 주변에서 반도체 관련 학과로 재입학하기 위해 반수를 준비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다”며 “인문·상경계열의 경우 졸업 후 진로가 명확하지 않아 다시 입시를 치른다면 반도체 계약학과를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단순한 학과 인기 상승을 넘어 산업 구조 변화가 입시 판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례라고 분석한다. 실제 국내 대학 입시에서는 시대별 산업 변화에 따라 선호 학과가 크게 달라져왔다. 건설 경기 호황기에는 건축·토목 계열이, 정보기술(IT) 산업 성장기에는 컴퓨터공학 계열이 강세를 보였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과거 건설 경기가 활성화될 땐 건설학과가, 컴퓨터 보급 시기엔 컴퓨터공학과가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다”며 “이제는 반도체로 그 흐름이 넘어간 것이다. 취업이 잘되고, 처우가 좋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산업의 변화 속도가 과거보다 훨씬 빨라졌다는 점이다. 반도체 산업이 현재는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지금의 고등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해 취업 시장에 진입하는 4~6년 뒤에도 같은 상황이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불과 2~3년 전 반도체 계약학과 지원 학생 수가 모집 인원에 미달하기도 했었다”며 “지금 현상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지켜봐야 한다. 학생들이 현재가 아닌 미래를 고민하며 진로를 결정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학생들이 특정 산업의 단기 호황만 보고 진로를 결정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산업은 변하지만 문제 해결 능력과 사고력, 기초 학문 역량은 어떤 분야에서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 교수는 “지금 당장 유행하고 있는 기술은 몇 년 뒤 사라질 수도 있지만 기초 역량은 남는다”며 “교육 정책이 1~2년마다 바뀌다보니 매번 학과가 통폐합되거나 새로 만들어지며 대학 구조 자체가 흔들린다. 장기적이고 일관성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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