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만난 연극, 연극 만난 문학 …'낭독극'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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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만난 연극, 연극 만난 문학 …'낭독극' 뜬다

입력 : 2026.06.08 17:35

공연계 새 흐름 된 낭독극
쇼케이스 넘어 장르로 진화
한강 원작은 아비뇽 무대에
대학로선 낭독극 페스티벌
"경계 넘는 시도" 호평 일색

배우 박정자가 '영영이별 영이별'에서 정순왕후를 연기하고 있다.  화이트캣 씨어터컴퍼니

배우 박정자가 '영영이별 영이별'에서 정순왕후를 연기하고 있다. 화이트캣 씨어터컴퍼니

무대 위에 놓인 것은 의자 둘과 보면대 둘이 전부다. 그러나 객석은 숨을 죽인 채 의자에 앉은 두 배우의 낭독에 귀를 기울인다. 언뜻 인디 가수의 공연장 같은 이곳은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은 '낭독극페스티벌'이 열린 서울 대학로 소극장 혜화당이다.

지난 4일 이곳에서 만난 작품은 '아스라이, 저 반딧불처럼'. 50여 석 남짓한 객석은 평일 늦은 회차인데도 빈자리가 없었다. 무대 장치도, 화려한 조명도 없이 핀 조명을 받은 배우들이 보면대 앞에서 대본을 읽어 내려가자, 관객의 시선은 자연스레 목소리와 대사로 모였다. 보이는 것이 줄어든 자리를 상상이 채우는 사이, 배우들은 보면대에 뚫린 구멍에 손전등을 비춰 여러 마리의 반딧불이를 그려냈다. 낭독극의 한계로 지적돼온 '비어 있음'을 오히려 장면의 언어로 끌어올린 순간이었다.

배우가 보면대 앞에서 희곡을 소리 내어 읽으며 극을 구현하는 낭독극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분장과 세트, 동선과 대사 암기 없이 목소리와 텍스트에만 집중하는 형식이다. 무대에 보이는 정보를 덜어낸 대신 그 공백을 관객의 상상이 채우며, 텍스트 자체에 집중하게 하면서도 눈으로 읽을 때보다 이야기를 더 가깝게 느끼게 한다는 것이 매력이다.

소리 내어 읽어 들려주는 일은 낯선 시도가 아니다. 다만 무대 형식으로서의 낭독극은 그동안 본공연에 앞서 반응을 살피고 제작 후원을 찾는 쇼케이스, 이른바 '스테이지 리딩'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최근의 흐름은 다르다. 낭독극은 미완의 검증 무대를 넘어, 그 자체로 완성된 독립 축제이자 정식 공연으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강점도 뚜렷하다. 무대장치와 의상이 없으니 제작비와 준비 기간이 크게 줄어 신작 희곡을 빠르게 올려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희곡이 아닌 소설이나 시, 산문까지도 각색이나 무대화 부담 없이 곧장 공연의 소재로 끌어올 수 있다. 관객에게도 매력은 적지 않다. 큰 제작비나 화려한 세트 없이 좋은 텍스트 하나면 성립하는 공연이어서 관람료와 진입 문턱이 한결 낮고, 배우의 목소리와 호흡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즐거움도 크다. 익히 알던 소설이나 시가 배우의 입을 거쳐 소리로 되살아나는 순간을 만나는 재미다.

이런 흐름 속에서 서로 다른 무대들이 낭독극이라는 한 형식 안에서 만나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원작으로 한 낭독 공연 '작별하지 않는다-새'는 오는 7월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의 교황청 명예극장 무대에 오른다.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한국 배우 이혜영이 함께 서며, 10월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서도 선보인다. 대학로에서는 앞서 본 혜화당의 페스티벌이 8개 팀 8편을 올렸다. 짧은 기간의 대관조차 어려운 소극장 현실에서, 장기 대관으로 낭독극 전용 실험 공간을 마련한 시도다.

문학을 목소리로 옮겨 무대에 세우는 흐름은 거장 배우와 작가 본인의 무대로도 이어진다. 배우 박정자(84)는 김별아의 소설을 옮긴 낭독극 '영영이별 영이별'로 6월 15일 '인사아트위크' 개막 무대에 선다.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삶을 그린 드라마 콘서트 형식이다. 지난 4일 막을 올린 제8회 페미니즘 연극제도 문을 연 낭독 공연으로 '나의 뱀'(작·연출 허선혜)을 올렸다.

장윤실 배우(오른쪽)와 장혜령 작가가 목소리극 '여자는 왜 모래로 쓰는가'를 함께 낭독하고 있다. 장 작가의 산문집을 토대로 한 이 작품은 지난 5월 제주에서 공연됐다.  작가제공

장윤실 배우(오른쪽)와 장혜령 작가가 목소리극 '여자는 왜 모래로 쓰는가'를 함께 낭독하고 있다. 장 작가의 산문집을 토대로 한 이 작품은 지난 5월 제주에서 공연됐다. 작가제공

시인이자 다원예술가인 장혜령은 산문집 '여자는 왜 모래로 쓰는가'를 토대로 한 '목소리극'을 지난 5월 제주에서 선보였다. 의사 파업 기간에 어머니를 간병한 경험과 제주 신화 '원천강본풀이'를 현대적으로 엮었다. 관객의 발화와 참여까지 공연의 일부로 끌어들인 형식이 특징이다.

장 작가는 이 공연을 본공연 전 단계의 낭독극과 구별되는, 그 자체로 완성된 형태로 기획했다고 했다. 낭독에 천착하는 이유로는 현장의 공기를 들었다. 그는 "낭독을 하는 그 순간, 연극을 하는 바로 그 순간 모두가 같은 공기를 공유하고 함께 경험한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와닿았다"고 했다. 형식 자체가 시와 연극이 맞닿는 자리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문학에서, 혹은 연극에서 출발한 예술들이 '낭독극'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교집합으로 삼아 모여드는 일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장 작가는 낭독극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형태의 공연이 새롭게 등장하는 흐름을 두고 "예술 장르마다 경계를 넘으려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며 "새로운 형식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 사람들이 새로운 이름과 형식을 발명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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