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환의 투자이민 파헤치기] 미국 취업 이민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그중에서 고학력 독립이민(NIW)은 고학력·전문직 종사자가 비교적 수월하게 영주권을 취득하는 셀프 청원 루트로 오랫동안 각광받았다. 하지만 작년부터 이어진 심사 추이와 올해 개정된 미국 이민국(USCIS)의 새 지침을 보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단일 기업에서의 성공 스토리만으론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NIW 심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 요소의 하나인 ‘국가적 중요성(National Importance)’ 요건이 대폭 강화됐다.
예전엔 “우리 회사가 미국 시장에 진출해 매출을 늘리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라는 식의 단일 기업 위주 설명만으로도 어느 정도 통했다. 그러나 올해 초 시행된 USCIS 지침에서는 “한 회사와 그 고객에만 국한된 이익은 국가적 중요성으로 보기 어렵다”라고 못 박았다.
실제 사례를 보면 배터리 소재 스타트업 ‘라이트셀’의 CTO 박지훈 박사(가명)는 올해 초 NIW 청원서를 작성하면서 주로 “우리 회사가 미국 공장을 확장하고 고용을 창출한다”라는 내용에 집중했다. 그런데 뒤늦게 새 가이드를 확인하고 미국 에너지부(DoE)와 연계된 배터리 공급망 보고서나 투자 유치 계약서 등을 긴급히 추가했다.
이를 통해 단일 회사 성장을 넘어 ‘미국 공급망·산업 정책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부각했다. 그 덕분에 RFE(추가 서류 요구) 없이 NIW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이번 개정 지침의 핵심 목표는 첨단 분야에서 진정한 핵심 인재를 빠르게 영주권을 매개로 유치하는 데에 있다. 반도체·AI·양자컴퓨팅·바이오·배터리 등 연방정부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한 분야이다. 이주업계에 따르면 여기에 종사하는 연구자와 창업자들은 오히려 속전속결로 NIW에서 승인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R&D 직군에서 최근 NIW 승인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다. 그러나 단순히 석박사 학위와 특허·논문 개수만을 내세우면 통하지 않는다.
정부 과제를 수주했거나 FDA·DARPA(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 같은 국가 기관과 직접 협력한 프로젝트, CHIPS Act 등 연방 법안과 연결된 상용화 이정표 등을 **‘정량 데이터’**로 제시해야 설득력이 높아진다.
한편 바이오·의료·공중보건 분야 역시 NIW 심사에서 꾸준히 강세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공중보건 인프라 확충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병원·연구소·정부 기관 등에서 활약한 전문가들은 국익 기여도를 비교적 수월하게 증명할 수 있다.
팬데믹 이후 스타트업 창업자와 테크 CEO들이 NIW를 대거 신청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미래가 밝다”라는 막연한 비전만으로는 더 이상 승인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 이민국은 개정 지침에서 “투자 유치 규모, 매출 성장, 고용 창출 수치 등 구체적인 성과 지표를 제시하라”라고 명시했다.
실제 미국 투자자로부터 받은 계약서, 현지 법인 인력 현황, 향후 2~3년 매출 예측 모델 등이 서류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반면 컨설팅·디자인·개인 창업 등에서는 “국가 차원의 산업 생태계나 공공 정책에 얼마나 이바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승인 가능성이 매우 낮아진다. 실제로 IT 컨설팅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김민서 대표(가명)의 예를 보자.
그는 ‘한국 대기업 포트폴리오’를 강조했음에도 거절 통보를 받았다. 심사관은 “단일 기업 및 국내 고객 중심 사업은 국가적 중요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발표된 NIW 개정안은 ‘서류 설계’가 한층 정교해야 함을 시사한다. 다음 세 가지 포인트가 특히 중요하다.
우선 추천서의 구체성이다. 단순한 인물 소개서가 아닌 “미국 산업·기술·정책에 실질적 기여를 하는 인재인가”를 입증하는 내용이 필수이다. 추천인의 권위도 심사 결과에 큰 영향을 준다.
다음으로 정량 지표를 통한 임팩트 증명이다. 논문 인용 수, 매출액, 투자금, 고용 인원 등 ‘숫자로 표현되는 성과’를 구조화해 제출해야 한다. 가령 “대략적으로 잘하고 있다”라는 식의 주장은 통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정부 로드맵·정책과의 연계성이다. CHIPS Act, IRA(인플레이션감축법) 등 연방 차원의 예산·법안·전략과 본인 전문성이 어떻게 맞물리는지 강조해야 한다. 정책 보고서, 의회 발언 자료, 정부 기관 협업 이력 등이 큰 도움이 된다.
정리하면 2025년판 NIW 핵심 메시지는 “개인→기업→산업→국가”로 이어지는 가치 사슬을 입증하라는 것이다. 단일 기업 성장이나 개인 경력만을 부각하기보다 미국의 산업·공급망·기술 경쟁력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이고 객관적 자료로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다.
라이트셀 CTO 박지훈 박사가 새 가이드를 확인한 뒤 청원서를 전면 개편해 에너지부 공급망 보고서, 투자 계약서, 구체적 고용 계획 등을 추가로 제출했다. 그 결과 단번에 승인을 얻어낸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이 NIW 신청자에게 진정으로 기대하는 건 “당신 업무가 어떻게 미국 경제·안보·기술 패권을 강화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변이다. 팬데믹 이후 급변한 글로벌 환경에서 미국은 특정 분야의 ‘게임 체인저’를 찾고 있다.
2025년 개정된 NIW 심사가 더욱 엄격해졌지만 진정한 전문성과 정책적 연계성을 갖춘 인재에겐 여전히 막혀 있지 않은 길임이 분명하다.
[홍창환 객원칼럼니스트(국민이주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