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까지 탄핵되고 나서 보수는 망해뿟는기라."
지난 16일 동대구역에서 기자와 만난 회사원 조아람(29세) 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윤석열 대통령까지 대통령 만들어 놓으면 탄핵돼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이제 보수라고 무조건 찍을 생각은 없다"고 토로했다.
2025년 조기 대선을 48일 앞둔 17일 대구에서 느낀 민심은 심상치 않았다.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던 대구에서도 "이번만큼은 고민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정치적 충성보다 '먹고사는 문제', '정치 혐오'가 민심 저변을 흔드는 모양새다.
"탄핵이 다 바꿔놨다"...청년층의 혼란과 회의
보수 정권에 우호적이던 TK의 2030세대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보수 진영 전체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고 입을 모았다. 윤 전 대통령 탄핵 전후로 드러난 정치권의 무능과 혼란이 결정타는 게 이들의 얘기다.
국민의힘 내부 갈등에 대한 피로감도 극에 달했다는 평가다. IT(정보통신)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김상진(39) 씨는 "국민의힘이 싸움만 하면 누가 표를 주겠나. 나라가 위기인데, 아직도 친윤이니 반윤이니 하고 싸우고 있더라"며 "차라리 이길 사람, 준비된 사람한테 표를 주고 싶다. 이젠 정당보다 사람 봐야 될 때"라고 했다.
중도 확장성보다 보수 정체성을 강하게 띄는 후보를 밀어주자는 정서도 흐릿해지는 양상이다. 보수 진영에서 '배신자'로 불리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에 대해 김민경(31) 씨는 "계엄 안 막으면 다른 선택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윤 전 대통령도 박근혜 탄핵 때 일조하지 않았나"라며"이재명이랑 견줄 수 있는 인물이면 지지해야지 별수 있나"고 반문했다.
강성 보수 노년층 "좌파 손에 나라 넘어가면 안 된다"
다만 보수 민심의 바로미터라로 불리는 서문 시장 상인들의 정서는 여전히 '강성 보수' 일변도였다. 서문시장역 인근 납작만두 가게를 운영하는 박경환(67) 씨는 "살다 살다 나이 60 먹고서 계엄이 터질 줄 누가 알았겠나"라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잘못했지만서도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랬겠나"라고 했다.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해서는 "대구는 의린데 모시던 사람 뒷통수치는 건 배신"이라고 했다.
반(反) 이재명 정서는 여전히 뚜렷했다. 서문시장 1지구와 2지구 사이 골목길 사이 좌판을 운영하는 상인들은 공통으로 "이재명은 절대 안 된다. 좌파 손에 나라 넘어가면 안 된다"고 소리쳤다. 다만 '누굴 대통령 후보로 지지하냐'는 질문엔 "이번 판에 또 실수하면, 다음은 없다"면서도 "특출난 인물이 없지만 그래도 빨간색 찍어야지"라는 반응이 많았다.
세대 구분 없이 '정치 불신, '정치 혐오' 정서는 공통으로 짙게 깔려 있었다. 국가의 앞날과 경제를 신경 쓰는 '진짜 정치인'이 사라졌다는 토로도 많았다. 한 대구 시민은 "예전 박정희 대통령 시절처럼 나라 살리겠다는 기백 있는 인물이 안 보인다"며 "'보수=경제'라는 믿음도 옛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먹고살게 해주는 건 관심 없고 정치가 싸움질 편 가르기만 일삼아서 환멸 난다"고 비판했다. 일부는 "국민의힘 아(애)들, 싸움질만 안 했으면 (누구 뽑을지) 벌써 정해놨을기라"라고 자조했다.
대구 = 양현주 기자 hj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