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미술 거장 제임스 터렐
몰입형 설치작품 '웨지워크'
빛·공간·색 지각경험 극대화
사진·판화·조각도 전시
9월 27일까지 페이스갤러리
"어떤 사람들은 제 작업을 볼 때 어지러움증을 호소합니다. 하지만 그 감각에 스스로를 맡기고 작품 안에 좀 더 머무르면, 우리가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고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혼란 속에서 오히려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것이죠."
미국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82)은 빛과 공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각적 경험을 극대화한 자신의 작업은 우리가 무언가를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탐구라고 했다. 그는 "예를 들면 처음 공중 묘기를 하거나 비행기를 탔을 때 구토를 하는 등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적응하면 본인의 감각을 더 잘 인식하게 된다"며 "내가 하는 작업도 이런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각 예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제임스 터렐의 개인전 '더 리턴'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페이스갤러리에서 오는 9월 27일까지 개최된다. 한국에서 터렐의 개인전이 열린 것은 2008년 이후 17년 만이다. 발광다이오드(LED)를 활용한 장소 특정적 몰입형 설치 연작 '웨지워크'의 신작인 '더 웨지'(2025)를 비롯해 '글라스워크' 연작 4점 등 대형 설치 5점을 선보인다. 이와 함께 판화, 조각과 현재 진행 중인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대규모 프로젝트 '로든 크레이터'의 과정을 담은 사진 등 20여 점을 펼친다.
터렐은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출발한 '빛과 공간' 운동을 대표하는 작가로 빛과 공간의 물질성을 다루는 지각 예술에 오랜 기간 전념해왔다. 초창기에는 평면 작업을 통해 빛과 색, 공간에 대한 지각 경험을 실험했고, 1960년대부터는 빛을 매개로 한 다양한 설치 작업으로 확장했다. 특히 단순히 대상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자신이 대상을 '보고 있다는 상태'를 인식하게 하는 몰입형 설치 작업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스카이스페이스' 연작과 '간츠펠트' 연작이 대표적이다.
이번 전시 개막을 위해 최근 한국을 찾은 터렐은 "회화를 통해 빛을 묘사할 수도 있지만, 빛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드러내고 싶었다. 1970년대부터 빛을 투사하는 도구를 만들기 시작한 이유"라며 "이제는 LED와 컴퓨터 제어를 통해 작업을 좀 더 잘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이런 기술들이 나올 때까지 오래 살 수 있게 돼서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웃어 보였다.
터렐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빛 자체가 갖고 있는 가치를 느낄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빛의 진정한 힘은 빛이라는 물리적 실체 그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른 것을 드러내는 도구로서 빛을 사용하고 있지만, 내가 작업을 통해 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빛을 그 자체로 드러내 새로운 지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빛에 감응하는 존재이고 감각적 인식이나 생체 활동 등 빛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어둠 속에서 빛의 존재를 조형적으로 인식하게 해준다. '웨지워크' 연작의 경우 다양한 효과를 내는 LED 빛이 대각선을 투사돼 실제 벽면과 중첩되며 '빛의 벽'을 형성한다. 관람객은 어둠 속에서 실제 벽과 빛으로 형성된 벽을 동시에 마주하면서 일종의 혼란을 경험한다. 이때 빛의 벽은 실제 벽이 아님에도 벽으로 인식하도록 유도한다.
특별히 그가 천착한 것은 빛을 통해 작동하는 인간의 인식 체계다. 그는 "사람들은 흔히 빨간색이 뜨겁고 파란색이 차갑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파장이 짧은 파란색 계열 빛의 온도가 더 높다"며 "우리가 어떤 색깔의 빛을 뜨겁다거나 차갑다고 인식하는 것은 사람들이 실내 장식을 할 때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공간에 붉은 조명을 쓰고, 집중력을 요하는 공간에 푸른 조명을 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인공 조명으로 인한 빛 공해 속에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그는 "빛은 무언가를 비추기도 하고, 가리기도 하는 존재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고 했다.
[송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