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 많은 EU…국방비 늘리고도 무기 공동개발 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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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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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은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재무장을 본격화하는 유럽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졌다. 전함부터 전투기까지 각종 무기를 여러 국가가 공동 개발하기로 했지만 국가 간 규제 및 이해관계 불일치로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개발 비용 등이 예상보다 크게 불어나는 등 각종 비효율에 한국 방위산업계가 반사 효과를 누릴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 국방비 크게 늘린 유럽

유럽연합(EU) 국방비는 2024년 3430억유로에서 지난해 3810억유로(약 660조3911억원)로 증가했다. 지난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3.5%까지 끌어올리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결과다.

하지만 국방비를 실제 전력으로 바꾸는 방산 조달 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독일의 새 호위함 사업이 대표적이다. 최근 독일 정부는 F126 호위함 사업의 주요 사업자를 네덜란드 조선·방산 그룹 다멘에서 독일 군용 조선 기업 NVL로 바꿨다. 유럽 기업 전반을 대상으로 한 경쟁 입찰을 통해 2020년 다멘이 주계약자로 선정된 지 6년도 채 안 돼서다. 53억유로로 예상한 총사업비가 160억~180억유로로 세 배 이상 불어난 데 따른 대응이다.

사업비가 늘어난 첫 번째 원인은 국가 간 소프트웨어 불일치다. 설계 과정에서 프랑스 다쏘시스템 소프트웨어를 도입했지만 데이터 오류로 케이블과 배관이 엉뚱한 위치에 배치됐다. 이 내용이 그대로 독일 하청 조선소로 전달되며 규격이 맞지 않는 부품이 대량 생산됐다.

관료주의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독일 장비조달청은 문손잡이와 조명 스위치 위치까지 7000개 항목 이상을 일일이 요구했다. 영어 도면은 반려했고 종이 문서만 받는 구태도 고수했다. 결국 초도함 인도는 2028년에서 2032년으로 4년 밀렸다.

◇ 잇따른 공동 프로젝트 실패

이 같은 실패는 유럽에서 낯설지 않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을 중심으로 2017년 출범한 1000억유로 규모 미래전투항공체계(FCAS) 사업도 비슷한 경로를 걷고 있다. 6세대 전투기에 무인 드론과 인공지능(AI)을 결합한다는 구상이지만 작년부터 잡음이 나오고 있다. 주계약자인 프랑스 다쏘에비에이션은 작업 지분 80%와 시스템 아키텍처·비행 제어 소프트웨어 지식재산권(IP) 독점을 요구했다. 독일·스페인 측 에어버스는 동등한 분배를 주장하며 반발했다.

요구 사항도 나라마다 다르다. 프랑스는 핵 투발과 항공모함 운용이 가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핵무기와 항모가 없는 독일에는 불필요한 사항이다. 전투 클라우드만 공유하고 기체는 각자 제작하는 안이 거론되며 공동 개발은 포기 수순에 접어들었다.

독일과 프랑스의 차세대 전차 공동 개발 프로젝트인 주력지상전투체계(MGCS) 사업도 비슷하다. 2035년 실전 배치를 목표로 했지만 완료 시기가 2040~2045년으로 대폭 연기됐다. 프랑스 넥스터와 독일 라인메탈 등 두 나라 대표 방산기업 간 주도권 다툼이 원인이다. 주포 규격을 놓고도 프랑스는 140㎜, 독일은 130㎜를 고집하며 다퉜다. 사업 지연으로 주력 르클레르 전차가 2037년부터 퇴역하는 프랑스는 8년의 전력 공백을 감수해야 할 전망이다.

사공 많은 EU…국방비 늘리고도 무기 공동개발 잡음

◇ 한국에 기회 될까

실패 경로는 비슷하다. 국가별로 과도하게 다른 사양이 무기 설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비용 증가와 일정 지체로 이어졌다. 국내 방산업계 관계자는 “유럽의 무기 조달은 국가별로 쪼개져 각국이 자국 업체를 우선하는 ‘홈 바이어스’가 강하다”며 “공동 조달은 이름만 공동일 뿐 실제로는 국가별 맞춤형 소량 주문의 묶음이 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국 산업 보호, 전략적 자율성, 즉시 전력 확보라는 세 목표가 현장에서 상충하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정치적으로는 평등한 협력을 내세우지만 현장에서는 설계권과 지휘권을 둘러싼 갈등이 반복됐다. 공동 조달을 내걸고도 국가별 맞춤 요구가 커져 규모의 경제가 무너졌다는 지적도 있다.

EU와 안보·방위 파트너십을 체결한 한국 방산기업은 유럽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재무장의 시급성과 느린 방산 조달 사이에서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 방산 대기업 관계자는 “폴란드가 K2 전차를 비롯한 한국산 무기로 대규모 재무장에 나선 배경에는 유럽 공동 조달의 만성 지연에 대한 피로가 짙게 깔려 있다”며 “현지 거점을 늘리고 기존 공급망을 파고드는 전략으로 유럽 재무장 과정에서 한국 방산업계도 수혜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주완/김동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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