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부과한 세금 가운데 징수하지 못한 채 누적된 체납액이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110조 7000억원에 이르렀다. 2022년 말 102조 5000억원으로 100조원을 돌파한 지 불과 2년 만에 110조원도 넘어선 것이다. 지난해 국세 수입 336조 5000억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액수다. 체납자 수도 132만 9622명이나 된다. 세금을 꼬박꼬박 납부해온 대다수 국민은 허탈과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체납자 중에는 사업 실패와 실직 등으로 경제적 궁지에 몰려 세금을 내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사업이 잘되지 않아 폐업할 때 대출금은 못 갚아도 세금은 잘 챙겨내고 마무리하는 경우가 우리 사회에 훨씬 더 많다. 경제적 사정상 불가피하게 세금을 못 내는 ‘생계형 체납자’에 대해선 정부가 징수를 유예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생계형 체납자 분류가 엄정하게 이뤄지는지는 의문이다. 생계형 체납자가 분명한 경우에는 결손 처분 조치를 통해 체납액 통계에서 제외하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징수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세 체납액 전체의 82.5%인 91조 4000억원이 ‘정리보류’ 상태라고 한다. 정리보류는 체납자가 재산이 없거나 소재가 불분명해 징수를 잠정 중단하는 조치다. 조세 당국은 이런 체납을 사실상 징수가 어려운 경우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전체 체납액 중 정리보류의 비율이 그렇게나 높은 데는 조세 당국의 징수 의지가 미흡한 탓도 없지 않을 것이다. 조세 당국은 주기적으로 ‘고액 상습 체납자’에 대한 조사를 벌여 체납액 징수와 법적 처벌에 나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곤 한다. 하지만 고액이나 상습이 아닌 경우에도 악의적 탈세 시도가 많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납세는 모든 국민이 지는 1차적 의무이며 그 이행에 대한 공적 강요는 형평성을 갖추고 공정하게 집행돼야 한다. 이것이 조세정의의 요체다. 그러지 않고는 국가 공동체가 온전하게 존립할 수 없다. 국회의원 당선자나 장관 지명자 등 사회 지도층 가운데 세금 체납자가 발견되는 사례가 여전히 되풀이되는 것은 조세 당국의 징세 행정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뜻이다. 그 구멍들을 철저히 틀어막아야 한다.